[국민논단] 학교,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입력 2023-09-18 04:06

학급 풍경은 그 시대 사회상
반영… 당연시되던 꾸짖음이
이제는 아동학대 범죄로 논란

정작 교권 보호해야 할 교육청
문제 발생하면 교사와 기관장
징계로 마무리하기에 급급

성적지상주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위한 인성교육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

현명한 부모도 중요… 자녀가
귀하다면 홀로 설 수 있도록
자신의 행동 책임지게 해야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였던 지난 3월 동기모임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학창 시절엔 선생님께 단체로 혼나고 벌받느라 누구를 왕따시킬 여력이 없었다고. 정말 그랬다. 일제 탄압과 전쟁, 군사독재정권을 겪으며 한국의 공교육은 일본식 학교 시스템을 차용했고 군국주의에 영향받은 1970∼80년대 학교 문화는 엄격한 복장 규정, 상명하복과 체벌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학급 풍경은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50년대 자유당 시절 한국 사회의 초상을 초등학교 학급에 투영한 알레고리 같은 소설이다. 잘나가던 공무원 아버지의 좌천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학온 5학년 소년 병태는 급우들 사이에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는 반장 엄석대가 아이들 앞에서는 폭력과 회유를 쓰고 선생님들 앞에서는 최고의 모범생인 양 행동하는 이중성의 소유자임을 목격한다.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이들과 다른 길을 가려 애쓰던 병태는 가해와 따돌림에 굴복해 결국 석대에게 복종한다. 반 친구들을 협박해 대리시험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해온 석대의 행동은 심각한 범죄행위지만 이미 석대 체제에 안주한 병태는 선생님께 고발하지 못한다. 6학년에 다시 같은 반이 된 병태와 석대 앞에 서울에서 부임한 젊은 남교사 김 선생이 등장한다. 그는 만장일치로 반장에 선출되고 전교 1등을 독차지하는 석대가 정작 쉬운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위압과 부정행위가 있었음을 직감한다. 김 선생의 체벌에 결국 석대는 잘못을 자백하고 김 선생은 공모했던 아이들까지 모두 매질하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불의에 굴복했던 비겁함을 꾸짖는다.

영웅처럼 보이는 김 선생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교사에게는 아직 미성년인 석대도 가르침의 대상인데 석대는 결국 학교를 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방조한 5학년 담임에 비하면 김 선생의 용기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런 사건이 2020년대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당장 김 선생부터 잘렸을 것이다. 대리시험에 가담한 학생들은 소년원으로 송치되고 담임교사, 교무담당, 교감, 교장이 줄줄이 해직되고 몇 년간의 성적을 수정하라는 학부모들의 집단소송으로 한국 사회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학교 공간에서 교육의 주체인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근본 취지는 옳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방과후 십여분 교실청소를 시킨 것이 아동학대라며 담임교사 경질을 요구하고 아이가 학교활동 중 다치거나 꾸중을 들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항의하는 부모들은 아동보호법의 근본 취지를 과도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이다. 어떤 법령이든 사회의 근간으로 안착되기까지는 규범과 적용의 범주에 과도한 해석과 혼란이 있게 마련이다.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기에 실행 과정을 중재하는 기관의 섬세한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교권을 보호해야 할 교육청은 업무지침만 내릴 뿐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와 기관장 징계로 마무리하다 보니 학교장들은 논란을 덮기에 급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교육이 필요하고 교육 현장에는 갈등과 중재가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성적지상주의 학교 교육에서 인성교육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미국 교육자이자 성공회 주교였고 대학 총장이었던 토머스 카루더스는 교사란 “점차 자신을 필요 없게 만드는 사람(a teacher is one who makes himself progressively unnecessary)”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카루더스의 말을 마음에 더 깊이 새겨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다. 부모란 아이가 홀로 설 수 있게 점차 자신을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할 존재다. 아이가 귀하다면 오히려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하고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게 하는 게 현명한 부모일 것이다.

예전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에는 이인삼각 경기가 있었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학부모, 학생과 선생님, 때론 학부모와 선생님이 발목을 묶은 채 어깨동무를 하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다. 3인이 한 팀이 되기도 하는데 보폭이 다르고 마음이 급할수록 스텝이 꼬여 넘어지기 십상이다. 호흡과 속도를 맞춰 함께 뛰는 팀이 결국 승리하는 경기다. 교육에서 교사와 학부모는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한 팀이다.

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