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유기체로서의 언어

입력 2023-09-18 04:02

피진(pidgin)은 서로 다른 두 언어가 섞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혼성어를 의미하는 말이다. 피진이 한 국가에 뿌리를 내리고 모국어로 사용되는 경우를 크리올(creole)이라고 한다. 피진은 강대국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은 지역에서 자주 발견된다. 상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비즈니스(business)가 중국식으로 발음되면서 피진(pidgin)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피진은 공통점이 없는 두 언어가 섞이면서 발생한 것이기에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언어라고 여겨져 왔다. 크리올(creole)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이를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피진이 중국인 혹은 아시아인 노동자들의 영어이므로 배워서는 안 되는 말, 옳지 않은 말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이른바 ‘정통’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이런 피진은 수준이 낮은 언어이기에 배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이란 없다. 우리가 ‘정통’이라 여기는 것만이 존재할 뿐이다. 강대국 언어가 언제나 옳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겨져 왔을 뿐이다. 한국어 역시 다양한 언어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속담이 과거의 유행어 혹은 밈(meme)과 같은 것이었음을 떠올려 보면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변화하고 진화하며 고정돼 있지 않다. 옳은 언어와 그른 언어, 바른 언어와 엉터리 언어 역시 우리의 관념에 따른 판단일 뿐이다.

한국이 모국어로 된 시가 가장 많이 읽고 쓰이는 나라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언제나 놀라곤 한다. 한국어로 된 농담과 유행어 역시 매해 새롭게 발명되고 사라진다. 한국어가 매우 활발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독특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만 말을 한자리에 고정하고자 하는 건 물을 고이게 두는 일과 다름없다. 언어는 유기체처럼 발생하고 사라지며 변화한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