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김정은의 자충수

입력 2023-09-18 04:02 수정 2023-09-18 04:0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최대치로 경고했음에도 러시아 방문을 감행했다. 이런 선택은 북한의 입지를 극히 좁히고 핵의 효용성도 낮추는 악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만남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올 3월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범죄 피의자로 특정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유엔은 2014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반인권 행위자로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국제사회 보편적 규범을 해하는 두 지도자의 만남에 대해 ‘왕따’이자 ‘불량국가’ 지도자 간 회동이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북·중·러 구도를 구축하려는 중국조차도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제사회에서 북·러의 고립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회자되는 북·러 간 무기 거래는 매우 제한된다. 세계 최강 군사국가 중 하나지만, 재래·소모전으로 전쟁물자가 소진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북한 탄약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북한산 122·152㎜ 자주포 포탄과 100·115㎜ 전차 포탄 등이 이미 제공됐거나 곧 지원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북한 위성 발사체 등의 핵심 기술을 제공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핵심 군사기술을 동맹국 및 우호국에 제공한 사례가 없다. 1968년 핵 비확산체제 출범으로 핵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러시아이므로 핵 관련 기술을 쉽게 확산하지 않는다. 다급한 푸틴이 약속을 남발할 순 있지만, 실제 이행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냉전 시기부터 이른바 ‘시계추 외교’를 통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최대치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펼쳐온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이미 러시아가 밝힌 것처럼 제재 위반 소지가 적은 식량부터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받고, 원유·정제유·비료 등도 확보할 것이다. 무기체계 측면에서 가능성 있는 품목은 미그29 전투기다. 1970년대 개발한 노후 기종으로 러시아에서는 도태 중인 장비지만 북한은 여전히 조립설비를 유지하는 현존 전력이다.

문제는 제한된 거래라도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는 점이다. 2006년 10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718호 이후 북한의 모든 무기 거래는 금지됐다. 러시아가 12일 밝힌 “필요하다면 안보리와 관련한 절차적 문제도 북한 측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라는 언급이 유엔 제재 결의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겠다는 의도라면 러시아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찬성해 통과한 유엔 결의안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 없이 무효를 선언한다면 자기 부인에 빠지고 유엔을 형해화하는 행위가 돼 그간 누려온 권리에 근본적 손상을 입게 된다. 러시아의 대북 지원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나토 동맹국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대응해온 유럽은 북한을 보다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제재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대서양 나토 동맹과 인도·태평양 동맹을 연계하는 ‘통합억제’가 더 큰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제대로 발전한다면 북한은 한·미·일과 나토가 ‘연맹’하는 거대 안보협력체를 상대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단기간 원하는 것을 얻고 국제사회의 주목을 다시 획득한 김정은은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결국 북한을 더욱 고립으로 몰아가고 학수고대하던 제재 해제를 보다 요원하게 만들며 더 큰 대북 억제력을 추동하는 자충수로 기억될 수 있다.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