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카드 꺼내며 동정심
부추기지만 그것으로 대안
세력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부추기지만 그것으로 대안
세력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일방통행’에 저항하기 위해 대한민국 제1당이 꺼내든 카드는 단식이었다. 지지자들은 삭발로 호응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 단식을 두고 “단식 외에 할 수 있는 게 있느냐는 물음에 아무도 답을 못했다. 그래서 단식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민의 반향이 크지 않은 건 단식과 삭발이 갖는 ‘비장함’을 더는 찾을 수 없어서일 것이다.
1980~90년대 단식과 삭발은 약자가 강자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그때는 먹을 게 풍부하지 않아 끼니를 스스로 끊는다는 것이 결연한 의지로 비쳤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던 당시의 삭발은 부모가 물려주신 것까지 내던지며 저항한다는 뜻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단식과 삭발은 저항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비만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할 정도로 단식의 이미지는 예전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삭발의 경우 일부 남성 사이에서 ‘멋’이나 ‘강함’을 표현하는 일종의 헤어스타일이 돼버렸다.
중장년이 대다수여서인지 사회 변화에 유독 둔감한 정치권조차 단식과 삭발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만 못하다. 정치권에서도 ‘올드보이’라 불리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마저 과거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 1. 의원직 사퇴 2. 삭발 3. 단식. 왜? 사퇴한 의원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 없어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민주당 의원들도 단식과 삭발의 무게를 잘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 의원이 삭발하기 싫어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해당 의원의 삭발 여부가 ‘팝콘각’(어떤 상황이나 맥락이 즐거움을 주거나 매우 볼만함)이 되기도 했다. 이 대표 단식에 난색을 보이며 “도대체 왜 굶는 거야. 난 그런 거 못 해”라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의회 의석의 과반을 장악한 정당이 선택한 방법으로서 단식과 삭발은 덩치에 맞지 않는 너무나도 나약한 것이었다. “야당이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는 하지만 일반 국민이 봤을 땐 필요하면 ‘인해전술’로 자신들이 원하는 법을 죄다 통과시키는 거대 권력 집단이다. 저항의 주체와 수단 간 ‘미스매치’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식으로 위독한 야당 대표를 ‘잡범’에 비유할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에 “왜 손을 내밀어주지 않느냐”고 성토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되레 무력감도 준다. “저희가 구걸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예상을 안 했던 바는 아니지만”(고민정 의원)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민주당 스스로 다소 구차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수를 앞세워 ‘이종섭 탄핵’ 카드를 야심차게 꺼내 들었다가 이 장관의 ‘기습 사의 표명’에 한 방 먹으며 카드를 접는 장면에선 ‘180석을 줘도 안 되는구나’ 싶은 것 또한 현실이다. ‘이 장관 사의 표명을 예상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대통령의 인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있었지만, 장관 사의는 생각 못 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깎아 먹은 지지율을 민주당이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는 데 대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금의 민주당은 국정 대안세력으로서 유능함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믿음직스럽지도 않다. 단식과 삭발이라는 철 지난 추억을 꺼내며 동정심을 부추기지만, 동정심으로 대안세력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득표율은 이 대표가 보여줬던 시정·도정 추진 능력을 민주당이 흡수해 발휘해주길 바라는 기대감의 정도였다.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단식과 삭발을 불쌍히 여겨 표를 줄 정도의 심적인 여유가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없다. 민주당이 이번에는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이 대표 ‘단식 중단’을 결의했다고 하니 어떨지 지켜봐야겠다.
김영선 정치부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