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굴까. 대체 어떤 사람들이 우리집 냉장고에 쟁여 둔 만두, 볶음밥, 김치찌개, 육개장, 전복죽, 냉면, 우동, 피자를 만들어 준 것일까. 가정간편식(HMR)이 보편화된 시대, 누구나 이런 의문을 한 번쯤은 품어봤을 법하다.
오로지 기계식 공정이 전부일까, 아니면 사람의 손길이 적잖이 닿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 한 번쯤 떠올려 볼 만하다. 대체 누가, 우리집 냉장고에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답을 찾아보자면 이렇다. 식품기업의 연구원,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 등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우리집 냉장고의 가공식품을 책임지고 있다. 여기에 ‘셰프’의 자리 또한 빠뜨릴 수 없다. 요리 전문가들을 가공식품 생산에 투입할 뿐 아니라 아예 셰프들만으로 구성된 조직을 만든 기업도 있다.
10년 이상 경력 셰프가 모였다
CJ제일제당의 ‘푸드시너지팀’이 그렇다. 호텔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베테랑 셰프 12명으로 꾸려진 푸드시너지팀은 CJ제일제당의 HMR, 레스토랑간편식(RMR), 밀키트 등의 탄생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 식품시장을 선도하는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셰프 전담 조직 ‘푸드시너지팀’을 꾸리고 한국의 식문화를 이끌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K푸드가 세계적인 관심사인 상황에서 지난 12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푸드시너지팀을 인터뷰했다. 푸드시너지팀은 베테랑 셰프의 역량을 모아서 어떻게 가공식품에 기여하는지를 먼저 물었다.
“가공식품을 만드는 셰프들의 주요 업무는 ‘분석’입니다. 외식 레스토랑 셰프와는 접근이 다르죠. 취향이나 트렌드를 깊숙하게 접근해서 가장 특징적인 점을 메뉴에 녹여내기보다는 ‘내가 만든 메뉴가 집밥으로써 어떤 정체성을 갖느냐’를 고민합니다. 보편적으로 선호되는 맛은 어떤 것인지, 왜 대중이 이런 맛을 좋아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답을 찾으려고 해요.”(이기선 셰프)
CJ제일제당 푸드시너지팀은 2011년 처음 만들어졌다. 3명의 셰프로 시작해 현재 12명이 됐다. 모두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이다. 푸드시너지팀은 시장 환경과 트렌드 등을 파악해 메뉴를 개발하는 것부터 소비 편의성을 감안한 밀키트의 상품화까지 온갖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고급스러운 미식을 추구하던 호텔과 파인다이닝의 셰프들이 모여서 대중적인 맛을 찾아내는 데 투입되는 상황이다.
“가장 높은 허들은 ‘저희 팀’이에요(웃음). 10년 넘게 창의적인 작업을 해 온 셰프들이 모여서 저마다 의견을 냅니다. 국내외에서 글로벌한 경험을 해오다 보니 서로 의견이 다를 때가 많아요. 치열해지죠. 팀 안에서 인정을 받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저마다 캐릭터도 다르고, 모두의 의견이 사실은 전부 의미 있고요. 각자의 경험이 맛으로 녹아들거든요. 토론하고 갈등하면서 ‘최적의 맛’을 찾는 것 자체가 도전적인 일입니다. 그게 저희 업무의 재밌는 지점이죠.”(여현경 셰프)
허형민 셰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내부 허들이 더 높아요. 맛의 문제라기보다 ‘적절성’에 대한 논의라고 할까요. 맛에 대한 관점과 취향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맛이 대중적, 보편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의견이 훨씬 치열한 지점이 됩니다.”
‘집밥’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
푸드시너지팀 셰프들이 격렬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카테고리는 ‘집밥’이다. 12명의 셰프가 머리를 맞대도 하나의 공통된 견해를 뽑아내기 힘들다. 접근성이 낮고 쉬워 보이지만 가장 까다로운 메뉴가 집밥이라는 점을 전문가들이 새삼 확인시켜줬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들어맞는 게 가장 어렵거든요. 그래서 전문점을 기반으로 맛을 찾으려고 해요. 이미 개발된 레시피와 푸드시너지팀의 관점 사이에 간극을 줄이는 것, 원가나 품질 등 현실적인 점을 제품에 반영하는 것 등이 이 업무의 까다로운 대목입니다.”(한승목 셰프)
보편성과 대중성을 찾는 게 어렵다면서 예로 든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모두를 위한 김치찌개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중적이면서도 호불호 없는 메뉴 개발이 가장 어려워요. 김치찌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하지만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고, 찌개로 만드는 방식이 다르고, 누구는 신맛을 좋아하고 누구는 아삭하면서 달큰한 맛을 좋아하죠. 하나의 메뉴에 다양한 취향이 산재해있는, 대중적인 메뉴의 개발이 가장 고민스럽습니다.”(허형민 셰프)
최근에는 외식업계와 식품업계가 경쟁적이자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됐다. 식품기업이 만드는 RMR이나 밀키트 제품은 외식기업의 메뉴와 경쟁한다. 잘 나가는 외식업체의 대표메뉴가 식품기업의 RMR 상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서로 경쟁하는 한편, 서로 돕는 관계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CJ제일제당의 경쟁사는 다른 가공식품 기업이었어요.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집밥’이 중요해졌고, ‘외식같은 집밥’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생겨났죠. HMR이나 RMR이 다양해지고 밀키트 시장도 커지면서 식품기업의 경쟁상대로 ‘외식 레스토랑’이 포함된 거죠. 미쉐린 스타 셰프처럼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이들이 식품기업의 상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하고요.”(김은설 팀장)
호불호가 선명한 취향을 고수하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다. 대중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취향까지 챙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또한 가공식품을 구상하는 셰프에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메뉴 개발 때문에 3개월 출장하면서 모든 메뉴에 고수가 토핑되는 게 정말 싫었거든요. 그런데 함께 있던 셰프 멘토들이 ‘세상에 다양한 음식이 있는데 호불호 때문에 만나지도 못한다면 너무 아쉬운 일 아닌가’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식습관이 바뀌었고, 적극성이 생겼어요. 보편적인 맛을 찾으려면 유별난 취향에도 오픈마인드가 돼야 하더라고요.”(김정호 셰프)
그렇다면 대체 대중적인 맛은 어떻게 찾는다는 걸까. 싱거운 듯 현명하고, 지혜로운 듯 당연한 이야기가 나왔다.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많이 먹어보면 알아요. (웃음). 작은 식당, 프랜차이즈, 호텔, 파인다이닝 등등에서 구현하는 맛들을 체크하다보면 ‘보편성’이 드러나더라고요. 재료, 구성, 가격 등을 다 고려해서 ‘모두에게 부담없는 맛’을 찾으려고 애씁니다.”(김은설 팀장)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