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계부채 급증이 ‘부동산 정책’ 때문이라는 한은의 경고

입력 2023-09-15 04:02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이한영 기자

한국은행이 어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주택가격의 적정성을 보여주는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이 올해 26배라고 밝혔다. 직장인이 연봉을 한푼도 쓰지 않고 26년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29.4배보다는 다소 낮아도 2020년(17.4배), 2021년(23.6배)의 수치를 웃돌며 주택가격이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80% 수준이다 보니 부동산가격과 가계부채가 사실상 연동된다는 점이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를 꾸준히 줄인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43개국 중 10위권에서 지난해는 104.5%로 2위까지 올랐다. 가계부채 문제를 부동산과 떼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일정 수준(80~100%)을 넘을 경우 소비 위축을 초래해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질서 있는 디레버리징(부채 상환 및 축소)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부동산 정책의 일관된 수립과 시행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그동안 정권별, 시기별로 부동산 정책은 냉온탕을 반복했고 이는 정책 일관성 훼손과 시장의 불신을 불렀다. 전 정부에서 과세 위주의 규제를 해도 부동산가격이 급등하자 현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걸며 규제 철폐에 나섰다. 방향성이 잘못됐다 볼 순 없어도 경기 부양 차원에서 규제 완화에 올인하다시피 한 게 문제다.

기준금리는 2021년 중반 0.5%에서 올 초 3.5%까지 올랐는데도 2030세대가 규제 완화에 기대 올해 다시 영끌에 나서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의 40% 가까이를 점유했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7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금융 당국이 지난 13일 일부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을 조기 종료하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조건을 제한했다. 1년 남짓만에 부랴부랴 완화책을 거둔 건 시장 상황을 오판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영끌을 하지 않고도 조급해하지 않게끔 주택 공급을 충분히 하고 투기는 막는 핀셋 규제를 펼쳐야 부동산과 부채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