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독방

입력 2023-09-14 19:15

체발(剃髮) 수도사들이, 말없이 명상에 잠겨, 손에 묵주를 쥔 채, 저 아래를 산책하고 있다, 그리고 어렴풋한 메아리 깃든, 수도원의 포석을, 기둥에서 기둥으로, 묘지에서 묘지로, 느릿느릿 헤아려 본다.

그대, 젊은 은둔자여, 홀로 그대의 독방에 틀어박혀, 그대 기도서 저 하얀 종이 위로 악마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로, 그리고 죽은 자의 두개골 같은 그대 두 뺨을 불경한 황금색 분으로 치장하는 일로 그대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대의 위안인가?

…(중략)

밤이 모두의 눈을 감기고, 온갖 의혹을 잠재우면 이제 곧, 젊은 은둔자는 등불을 켤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독방에서 도망칠 것이다, 옷 속에는 나팔 총 한 자루, 발소리 죽여 가며.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 시집 ‘밤의 가스파르: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 중

최초의 산문시로 평가되는 ‘밤의 가스파르’에 수록된 시 중 하나다. 프랑스 시인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1807-1841)이 쓴 ‘밤의 가스파르’는 산문을 시에 끌어들인 선구자적 작품이었다. 이 시집이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과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