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국회 통과 눈앞… 의료계 반대 여전

입력 2023-09-14 04:04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각종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보험금을 간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 의원들은 타 법안과의 충돌 우려 등을 제기하며 재논의하자고 주장했지만 충분히 숙의된 내용인 만큼 다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더라도 의료계 반발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의료계를 설득하지 못하면 병원으로부터 진료정보를 받을 수 없게 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 있다.

13일 국회에 따르면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법안 통과 여부를 논의한 끝에 계류시키기로 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이 진료정보 열람·제공을 제한하는 의료법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고 짚으며 “정무위원회 의견을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 법안을 제2 소위원회로 보내 논의하자”고 말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정보가 축적돼 보험사가 상품 가입이나 연장을 거절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신진창 금융산업국장은 “의료법에 상충하지 않는다는 법제처 유권 해석을 받았다” “진료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누설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해 문제없다”고 반박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오는 18일 회의에서는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를 넘으면 시행에 필요한 절차가 사실상 끝난 것으로 여겨진다. 법안이 시행되면 병원이 영수증과 병명 확인서, 진료비 세부산정 명세서 등 여러 서류를 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바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지금처럼 서류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이메일, 팩스 등으로 보험사에 보내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가입자 편의성을 끌어올릴 민생정책으로 꼽힌다. 절차가 복잡한 탓에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바라고 있다. 청구체계가 간소해지면 특정 병원이 백내장과 도수치료 등으로 과잉진료를 해 실손보험금을 부정 수령하는 일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의료계가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는 이날 국회 앞에서 공동집회를 열고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면 진료정보 전송 거부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진료정보를 보험사에 보내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향후 사고가 터지면 중계기관과 보험사 간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 주장이다. 현재 법안에는 진료정보 전송을 거부한 병원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의료계 설득이 필수적이다.

김진욱 차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