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총 들고 거친 욕 내뱉는 노년 여성, 강렬하고 신선했다”

입력 2023-09-14 04:03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에서 아들에 대한 복수심에 들끓는 김경자를 연기한 배우 염혜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다양한 ‘아줌마’ 연기를 선보여온 배우 염혜란이 이번엔 모성애로 인해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아줌마로 돌아왔다. 2000년 데뷔 후 약 20년을 연극무대에 섰던 그가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부터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부지 남편을 둔 홍자영으로 분한 염혜란은 ‘걸크러쉬 아줌마’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에서 염혜란은 김경자로 시청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이 그의 억센 인생을 반영하는 듯한 이 백발노인은 아들의 죽음에 연루된 김모미를 향한 분노로 살아간다. 김모미를 추격하며 복수를 위해 납치·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혜란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렇게 강렬한 노인이라니’하며 감탄했다”며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여성 캐릭터는 본 적이 있어도 이렇게 나이든 여인이 장총을 들고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고 밝혔다.

경자는 점차 광적으로 김모미에게 집착한다. 과거에는 아들에게 집착했다.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경자의 비뚤어진 모성애는 모자 관계도 멀어지게 만들었다. 염혜란은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구성품으로 보는 비뚤어진 모성애에 대해 비난 받아야 할 지점도 있어야 했는데 보편성도 잃어선 안 됐다”며 “보통의 엄마, 어디선가 많이 봤던 억척스러움과 생활력을 가진 엄마를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경자의 모든 행위는 모성애로 설명된다. 하지만 염혜란은 “우리가 모든 범죄의 원인을 모성애로 가져가면 너무 쉬워지게 된다. 감독님과 모성애가 무소불위인 것처럼 보이는 걸 경계하자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경자의 말투는 투박하다.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염혜란도 고향이 전남 여수다. 사투리를 쓰기에 유리했지만 그는 경자의 고향인 목포 사투리를 정확하게 쓰기 위해 연구했다. 염혜란은 “더 풍부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기 위해 고증을 받았다”며 “전라도 분들이 ‘우리 이모 같았어’라고 해줄 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염혜란은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경이로운 소문’ 시리즈에서 악귀들을 물리치는 카운터 추매옥으로도 사랑받은 그는 202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여자 조연상을 받았다. ‘더 글로리’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감초 역할을 하던 그는 한 단계씩 자신의 저변을 넓혀왔다. 염혜란은 “전성기라는 생각은 최대한 안 하려고 한다. 긴 배우 생활을 봤을 때 한 지점일 뿐이고, 흘러가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자세를 낮췄다.

40대 초반부터 아줌마 캐릭터를 도맡아 해 온 그에게 ‘아줌마 전문’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그 자신도 “아줌마의 스펙트럼을 완성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줌마는 너무 다양하다. ‘아줌마’라는 한 단어로 40대 여성을 묶는 건 싫다”며 “더 멋있는 아줌마들,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아줌마가 나오는 작품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