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은 지난 7월 ‘고위 공직자 주식 거래 전면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고위 공직자는 물론 배우자 자녀까지 개별 주식 종목 거래를 아예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공직자가 업무를 통해 얻은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다. 여론의 지지가 80%를 넘을 정도로 높아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1978년 공직자의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해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 제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공직자가 재임 중 재산을 대리인에게 맡기고 절대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05년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주식 백지신탁제’를 도입했다. 고위 공직자가 3000만원을 초과한 주식을 보유한 경우 직접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맡겨(백지신탁) 60일 안에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공직자가 보유한 주식으로 인해 그가 담당하는 직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운영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주식 처분에 이의가 있으면 직무 관련성 여부를 판단받을 수 있는데 심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백지신탁을 했더라도 60일 이내 처분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연장이 가능한데 연장 횟수에 제한이 없다. 자칫 공직 임기가 끝날 때까지 주식을 보유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해외 주식과 가상자산은 백지신탁 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또 당사자가 재산권 침해라며 이에 불복해 소송할 경우 무한정 시간 끌기로 이어지게 된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배우자가 보유한 바이오 회사의 비상장 주식(약 8억2000만원)을 백지신탁하라는 인사혁신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했다가 12일 1심에서 패소했다.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도 건설사 대주주인 배우자의 회사 지분(약 65억원)을 백지신탁하라는 인사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지난달 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차관급 고위 공직자들의 잇단 소송에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도전받고 있다. 공직과 재산 가운데 재산을 지키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다. 자리에서 물러나면 된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