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탄소 감축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제도를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상승 흐름을 탔다. 이와 달리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기업에서 남은 배출권을 이월하지 못해 시장에 내놓는 매물이 늘면서 값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매년 상향되는데 배출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탄소 감축을 위한 기업의 설비투자 요인이 줄고 시장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3일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가격 동향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내고 지난 2020년 4월 전후로 4만2500원까지 올랐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지난 7월 7020원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유럽의 배출권 가격은 2만4030원에서 12만6140원으로 5배 이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배출권 가격은 1만9000원에서 4만7350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만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상의는 ‘배출권 이월 제한 조치’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현재 기업은 배출권 순매도량의 2배까지만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다. 이 범위는 내년부터 배출권 순매도량만큼으로 더 줄어든다. 배출권 이월 한도가 줄어들다보니 소멸되기 전에 배출권 거래 시장에 내놓는 매물이 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는 것이 대한상의 진단이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은 2020년 초반까지 주요국 가운데 상위권이었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높여 잡으면서 배출권 가격은 급등세를 탔다. 반면 한국의 배출권 가격은 내림세를 보이면서 기업들이 추가 감축 비용을 들이기보다 배출권을 사들일 요인이 더 높아졌다.
향후 갑작스러운 배출권 가격 상승에 따른 시장 충격도 우려 요소로 꼽힌다. 산업계에선 배출권 이월 제한을 완화하고, EU와 같이 정부가 배출권 수급을 조절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배출권 가격이 시장 원리에 따라 예측 가능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시장안정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