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 대표팀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금빛 활시위를 당긴다. 명실상부 양궁 세계 최강국인 한국은 양궁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 채택된 1978년 방콕 대회부터 직전 자카르타 대회까지 금메달 60개 중 42개를 쓸어 담았다.
명성답게 대표팀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다. 메달 수확이 유력한 선수 역시 한 명을 꼽기 어렵다. ‘국가대표가 되는 게 금메달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양궁 대표팀 선발 과정은 흔히 ‘바늘 구멍’에 비유된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낸 선수라 해도 매해 5차례의 선발전·평가전을 거치는 동안 한 번이라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면 즉시 탈락한다.
치열한 선발전을 통과했지만 아시안게임 본선에 오르기 위해선 관문이 하나 더 남아있다. 한국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본선 전에 펼쳐지는 랭킹라운드(예선)에서 다시 한번 내부 경쟁을 벌인다. 이번 양궁 엔트리는 종목별(리커브·컴파운드) 남녀 각 4명씩으로, 예선 결과에 따라 개인전(2명), 단체전(3명), 혼성단체전(종목별 남녀 각 1명) 본선에 오를 선수들이 결정된다.
다른 나라의 경우 통상 엔트리에 든 4명의 선수를 종목별로 적절히 분배해 출전시키지만 한국은 기준부터 다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만을 본선에 올린다는 원칙 아래 예선 1, 2위가 개인전에, 1~3위가 단체전에, 남녀 각 1위가 혼성단체전에 나갈 수 있다. 4위를 한 선수는 개인전은 물론이고 단체전도 출전하지 못하는 셈이다.
부담이 크지만 선수들은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리커브에 출전하는 대표팀 맏형 오진혁(현대제철)은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합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도 대표팀 일원”이라며 “경기장에 서 있지 않아도 같이 게임을 뛴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컴파운드팀 송윤수(현대모비스)도 “월드컵 등 지난 대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당시 4위를 한 선수도 뒤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다. 저희도 그 선수한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선수들에겐 이번 대회의 의미도 남다르다. 이번이 네 번째 아시안게임 도전인 오진혁은 올해를 끝으로 아시안게임엔 더이상 출전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한국 양궁이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남자 단체전에선 금메달을 따지 못했는데, 이번엔 동생들이랑 꼭 같이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표팀은 최근 막내린 2023 현대 양궁 월드컵 파이널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막바지 전초전을 잘 치렀다. 세계 최고의 궁수를 가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여자부 강채영(현대모비스)이 ‘왕중왕’에 올랐고, 남자부 이우석(코오롱)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을 위한 최종 점검을 마친 후 27일 결전지 항저우로 떠난다. 예선을 포함한 본 경기는 내달 1일부터 시작한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