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 워크숍에 온 분 중 여성 과학자가 있었는데 이분이 쓰려고 하는 책의 콘셉트가 ‘운동하는 과학자’였다. 과학과 운동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체력이 주는 자신감 때문에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근력을 키우는 것이 인생에 대한 투자라는 말도 했다. 귀가 얇은 나는 ‘근력을 키우는 게 인생에 대한 투자’라는 말에 꽂혀서 그가 다니는 ‘근력학교’라는 곳을 찾아가 회원 등록을 해버렸다. 운동엔 영 소질이 없어서 좋아하는 스포츠도 없고 군대에서도 남들 다 하는 태권도 초단도 따지 못해 하얀 띠를 두르고 있다가 제대했던 내가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러 다니기 시작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사실은 땡빚을 내서라도 근력학교는 꾸준히 다니라는 아내의 종용이 큰 역할을 했다).
알아주는 ‘운동 지진아’인 나는 일단 벤치 프레스, 풀오버, 가블릿 스쿼트, 레그 어시스트 풀업 등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용어들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런지 왜 운동 용어는 다 영어로 돼 있는 걸까, 하는 이상한 반발심만 들었다. 어깨가 너무 굳어 있다 보니 관장님이 보여준 동작을 따라 하면서도 이게 맞나 하는 의심에 시달려야 했다. 낑낑대며 운동 기구에 매달려 있으려니 나보다 먼저 이곳을 다니고 있는 여성 과학자가 너무 늠름해 보였다. 그런데 다른 헬스클럽과 달리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위로도 있었다. 여기서는 안 되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운동을 멈추게 했고 한 동작이 끝나면 무조건 2분씩 쉬었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나는 차츰 깨달아 갔다. 누구도 처음부터 능숙하게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고 결국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게 운동을 잘하게 되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뭐든 천천히 꾸준히 하는 건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정의는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라는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의 말이다. 잘 쓰든 못 쓰든 꾸준히 매일 쓰는 사람에겐 못 당하는 법이다. 글쓰기 수업이나 북토크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도대체 어떻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씻고, 잠깐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글을 쓸 시간 따위는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쓸까. 그 사람들도 시간이 안 나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떡하든 시간을 내는 게 다를 뿐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이상하게 피곤하거나 갑자기 다른 할 일이 떠오르는 건 전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걸 참고 글을 쓰는 사람만이 의미 있는 글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어제 서울 양재동에 있는 작은 서점에 가서 글쓰기 강의를 했다. 어디서든 생각이 나면 곧바로 메모하고 매일 그걸 들여다보며 글 쓸 궁리를 해야 한다고 했고, 새벽이든 점심시간이든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쓰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서점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봉사활동을 하며 글을 써보려는 여성분도 왔고,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산다는 남자분도 왔고, 소설을 쓰려다가 안 써져 잠정적으로 포기한 여성분도 있었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분은 내가 ‘오랫동안 노력하다가 이제 이쯤 하면 될 만도 한데, 참 안 되네…’ 하고 힘이 빠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어떤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와락 반갑더라는 것이다. 노력하면 하는 만큼 바로 그래프가 쭉쭉 올라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글쓰기는 물론 공부도 다이어트도 모두 그렇듯이 모든 성공 그래프는 계단식이다. 꾸준히 쌓이다 보면 언젠가 비약적으로 올라가는 순간이 있고 거기서 또 지지부진하다가 다시 또 오르는 식이다. 그런데 그 ‘올라가는’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함정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깨가 안 좋아서 당분간 백 스쿼트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소리를 들었던 내가 관장님이 가르쳐준 대로 집에서 슈러그(어깨를 으쓱하듯이 움직여 승모근을 발달시키는 운동)를 꾸준히 했더니 어느 순간 결리는 현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대단한 각오를 하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초시계를 켜놓고 했을 뿐인데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역시 꾸준히 쌓이는 것들의 힘은 크고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