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태양은 김일성 주석을 지칭한다. 오직 한 명, 유일한 지도자라는 의미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이 ‘태양절’,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곳이 ‘금수산태양궁전’이다. 예전 모 종편 프로에 패널로 나온 탈북자들이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은 북한에서 공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태양을 이름으로 한 것 자체가 불경죄라서다.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해 태양을 동원한 이가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김일성 생일은 원래 ‘4·15절’로 불렸다가 그의 3년상이 끝난 1997년부터 김 위원장이 태양절로 격상시켰다. 금수산태양궁전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의 70회 생일을 기념해 2012년 2월 15일 개칭됐다. 생전에 아버지를 신으로 띄웠고 사후엔 본인도 같은 급에 오른 셈이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급열차 ‘태양호’를 타고 러시아로 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서다. 태양호는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 위원장까지 3대가 이용하고 있다. 태양의 위상에 걸맞게 노래방, 위성통신, 의료시설, 방탄시설 등을 갖춘 북한 최고 열차다. 그런데 세계는 3대째 열차 해외순방을 손가락질한다. 김 위원장은 비행기로는 2~3시간이면 갈 1200㎞ 거리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일본 신칸센 고속열차의 6분 1 수준인 시속 50㎞로 하루 이상 간다. 4년 전 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로는 60시간 동안 기차로 달렸다. 아버지 김정일은 2001년 7월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왕복 2만여㎞를 24일간 열차로 오고 갔다. 열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삼엄한 교통 통제로 중국·러시아인들의 원성이 치솟곤 했다.
인민 앞에선 태양과 그 후예를 자처하면서 테러에 노출될까 겁나 열차 순방을 고집한다. 인민은 굶주려 있는데 최고지도자는 태양호에서 러시아, 한국, 프랑스식 요리와 와인을 맛본다. 2015년 러시아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는 북한을 체제가 주도하는 거대한 조작과 기만의 공간이라 고발했다. 태양호 순방 쇼를 찍으면 ‘태양 아래 2’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