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긴축 재정에 밀린 국민참여예산, 2년 만에 9분의 1로 준다

입력 2023-09-12 04:06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한 국민참여예산 제도를 통해 제안된 사업 대부분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 편성 과정에 국민 목소리를 담는다는 도입 취지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국민참여예산 제도를 통해 제안된 사업 수는 13개로 집계됐다. 13개 사업에 배분된 예산은 인공지능(AI) 심리케어·돌봄지원(60억원), 습지보전관리(40억원) 등을 전부 합쳐 157억1700만원에 불과했다.


국민참여예산은 국민이 직접 예산 사업을 제안하고 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2017년 시범도입된 이후 2018년부터 5년간 제도가 활성화됐다.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국민참여예산 규모는 2018년 6개 사업(422억원)에서 2022년 71개 사업(1414억원)까지 확대됐다. 그사이 온라인 여권신청 서비스, 국군장병 패딩형 동계점퍼 시범지급 등 다양한 생활밀착형 사업이 국민참여예산을 통해 시행됐다.

하지만 현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전면에 내건 지난해부터 국민참여예산의 존재감은 쪼그라들었다. 올해 정부 예산안에는 모두 50개 사업이 국민참여예산을 통해 반영됐지만 금액은 2022년의 3분의 1 수준인 482억원이었다. 내년 예산안에선 사업 수까지 13개로 줄면서 반영 규모가 2년 전보다 9분의 1로 급감했다.

내년 예산에 반영할 만한 국민참여예산 사업 제안이 없어서 감소한 것은 아니다. 국민참여예산은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안 중 소관부처의 ‘적격’ 판정이 나온 사업을 대상으로 예산 편성 여부가 결정된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년도 사업 제안 가운데 적격은 83개로 올해(82개)보다 1건 많았지만 시의성 있는 적격 사업 다수가 예산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숙련된 고령근로자에게 장려금을 지급해 중소사업체의 인력 수급을 돕는 ‘재취업 고령근로자 장려금 지원사업’이 대표적이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연계해 일회용컵 회수를 장려하는 ‘일회용컵 회수 지원금’ 사업도 마찬가지다.

반영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국민 의견을 예산에 반영한다는 국민참여예산의 도입 취지도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전 정부 지우기’ 영향이라는 해석도 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해 담당 부서였던 참여예산과의 명칭을 재정정책협력과로 바꾸고 담당 업무 중 국민참여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축소했다. 매년 예산 편성 후 발표하던 국민참여예산 관련 보도자료도 지난해부터 발표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는 특별한 의도 때문이 아닌 전반적인 긴축기조의 영향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민참여예산으로 제안된 사업도 심의단계에서는 다른 사업과 동일한 심의 과정을 거친다”며 “소관부처 선에서 이미 요구가 줄어서 넘어온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