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1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최소 2012명이 사망하고, 2059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직 피해 규모가 정확하지 않은 데다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대 도시 마라케시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도 지진으로 크게 훼손됐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모로코 내무부는 9일(현지시간) 이번 지진으로 마라케시와 진원지 인근 5개 주에서 최소 201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중상을 입은 1404명을 포함해 2059명이 부상했다. 특히 진앙이 위치한 모로코 남부 알하우즈 지역에서 1293명이 사망해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내무부는 중환자 수가 많은 데다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 사상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지난 8일 오후 11시11분쯤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72㎞ 떨어진 아틀라스산맥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지진 규모를 6.8로 추정했으나 모로코 지질연구소는 7.2로 추정했다”며 “지진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진원의 깊이도 10㎞ 정도로 상대적으로 얕아 깊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보다 지표에서 받는 충격이 훨씬 더 컸다. 지진이 발생한 지 몇 초 뒤에는 규모 4.9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AP는 전했다. 진동은 350㎞ 떨어진 수도 라바트와 카사블랑카, 아가디르, 에사우이라에서도 감지됐다. 지중해 건너 스페인 남부 우엘바와 하엔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밤중에 지진이 발생하자 대부분 주민들이 집에서 뛰쳐나와 밖에서 잠을 잤다. 마라케시 중심부 올리베리 공원에서는 수백명이 여진을 우려하며 이틀째 담요와 매트리스를 깔고 밤을 지새웠다. 왕립 모로코군은 X(옛 트위터)에 “여진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진으로 모로코 남부의 산악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에 취약한 진흙 벽돌로 만든 오래된 건물들이 많은 탓에 피해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마라케시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아스니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집이 파손됐다. 산악지대에 위치한 우아간 밸리 등지에선 전기와 통신 서비스가 중단됐다. 시골지역의 도로들이 지진 잔해로 막히거나 훼손돼 인력과 장비를 나르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진원지 인근 아미즈미즈 마을에서는 구조대원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들어올리며 수색 작업을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모로코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자 관광지인 마라케시의 역사 유적도 지진의 영향을 다수 받았다. 이번 지진으로 12세기에 건설된 쿠투비아 모스크가 일부 무너졌고,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알려진 69m 높이의 첨탑도 손상됐다. 온라인으로 공유된 영상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시가지 메디나를 둘러싼 붉은 성벽의 일부가 훼손되는 모습이 담겼다.
AP는 이번 지진이 120년 만에 북아프리카 국가를 강타한 가장 큰 지진이라고 전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 사이에 위치해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USGS는 “아틀라스산맥의 비스듬한 역단층이 이번 지진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에선 애도와 지원 의사 표명이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지난 2월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론 2021년 국교를 단절했던 알제리도 인도적 지원을 위한 영공 개방을 약속했다. 모로코 정부는 희생자들을 위한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