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칼 봐도 이렇게 무서운데” 호신술 배우는 시민들

입력 2023-09-11 00:04
김용기(오른쪽) 백호체육관 관장이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백호체육관에서 구청 주최로 열린 여성 호신술 아카데미에서 스트레칭 시범을 보이고 있다. 120명을 선착순 모집한 이 수업은 단 하루 만에 신청 마감됐다. 윤웅 기자

15명 중 방어 성공은 단 3명.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백호체육관에서 진행된 ‘흉기 난동’ 방어 실전 연습에서 교육생들은 강사 2명이 휘두르는 가짜 흉기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망치다가 무의식적으로 등을 보이거나, 앞서 배웠던 호신술을 쓰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연이은 공격에 주저앉은 30대 이모씨는 “진짜 흉기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소리만 질렀다. 막상 이런 일이 닥치면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연이은 흉악범죄로 호신술을 배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내 체육관과 연계해 호신술 강좌를 열고 있다. 백호체육관이 있는 광진구는 10대부터 50대까지 여성 구민을 대상으로 호신술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총 120명을 선착순 모집했는데, 하루 만에 마감됐다. 1970년생부터 2011년생부터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했다.

이날 수업도 흉기 난동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강의를 맡은 김용기 백호체육관 관장은 최대한 도망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첫 번째라고 했다. 흉기가 날아오는 방향을 보며 몸을 피하거나 우산이나 가방으로 흉기를 막아내는 연습도 이어졌다. 김 관장은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수업 뒷부분에선 실제 흉기와 똑같이 생긴 고무칼이 등장했다. 스펀지 막대기는 곧잘 쳐내던 한 교육생도 고무칼이 날라오자 “무섭다”며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상당수 교육생이 칼에 시선을 떼지 않고 어느 정도 방어를 해내는 모습이었다. 김 관장은 “1시간만으로 완벽히 배울 순 없지만, 이 정도만 돼도 실제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교육생 대부분은 ‘내 몸은 내가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체육관을 찾았다.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들은 김모(25)씨는 “최근 지인이 지하철역에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와서 손목을 끌고 가려고 했다”며 “평소에 안전불감증이 있었는데 요새는 정말 남 일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수업 내내 웃음이 가득했던 교육생들이지만, “실제로 써먹을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윤모(28)씨는 “최근 흉악범죄 피해자 나이대가 나와 비슷하다 보니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그게 나일 수도 있겠다’라는 게 확 와닿았다”고 했다. 또 다른 교육생 안모(25)씨도 “얼마 전 할머니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세상이 흉흉한 데 잘 있냐고 물었다”며 “호신술을 배워 조금이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호신술의 높은 인기에 씁쓸한 마음도 없지 않다고 했다. 그는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호신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며 “달라지는 범죄 패턴에 맞춰 수업도 강화해 나간다. 주기적으로 관장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