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식사자리 부른 뒤 ‘술 따르라’… 선넘은 지역 축협

입력 2023-09-08 00:04
연합뉴스

여성 직원에게 고객과의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고, 이를 문제삼자 인사 발령을 내는 등 지역 금융기관의 ‘괴롭힘’ 실태가 또다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농협·축협 등 110여곳을 기획감독한 결과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이 계속되는데도 업계 문화와 관행이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통렬히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용부는 7일 농·축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 지역 금융기관 11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획감독에서 모두 763건의 법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사례 5건, 임금체불 214건, 비정규직·성 차별 7건, 연장근로 한도 위반 33건 등이다. 지역 금융기관 대상 기획감독은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간 진행했던 새마을금고·신협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A축협의 경우 임원이 여성 직원에게 고객과의 식사자리 참석을 종용하고, 고객의 술을 따르게 하거나 직원 본인이 마시도록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원이 이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자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지점으로 인사 발령을 냈다고 한다. 고용부는 해당 임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B신협은 임원이 “나한테 잘 보이면 보너스 점수를 주겠다”며 워크숍에서 장기자랑과 공연을 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식 도중 술을 깨기 위해 홀로 앉아 있는 여성 직원에게 남성 임원이 강제로 입을 맞추는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또 기간제 근로자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이를 거부하자 CCTV 위치를 변경해 이 근로자의 업무를 감시하는 등의 괴롭힘 사례도 확인됐다.

C축협 조합장은 매주 월요일이면 전 직원에게 율동을 추는 동영상을 촬영하도록 하고, 이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뒤 영상 속 여성 직원의 외모나 옷차림을 지적했다. 고용부는 이들 사례를 포함한 법 위반사항 35건에 대해 과태료 4700만원을 부과했다. 나머지 위반사례에는 시정 조치를 지시했다.

기획감독 결과는 이날 서울지방고용청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간담회’에서도 소개됐다. 간담회에는 문제가 된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중앙회 대표이사 등도 참석했다.

이 장관은 간담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은 노동자의 삶과 존엄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 시스템 구축, 경영평가 개선, 조직문화 혁신 등 개선 방안이 현장에서 실천 및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