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당헌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업무 공백과 재보선을 치르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 공당으로서 책임을 다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규정은 여러 차례 무시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사망·사퇴해 2021년 4월 7일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였다. 후보자 추천이 당헌 위배라는 비판이 일자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꼼수를 부려 공천을 강행했다. 서울과 부산 두 곳에 모두 후보자를 공천했지만 결과는 둘 다 낙선이었다. 명분도, 실리도 잃고 민주당에 대한 불신만 키운 무리수였다.
국민의힘은 당규에 지방선거에 한해 무공천 규정을 두고 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귀책 사유로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지만 국민의힘은 지난 4월 5일 경남 창녕군수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결정을 한 후 당규 정신을 존중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오는 10월 11일 실시되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김태우 전 구청장 공천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이라면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선거는 김 전 구청장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하는 바람에 실시된다. 다른 사람을 공천해도 당규의 정신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올 텐데 보선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공천하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김 전 구청장이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한 공익제보자이고 특별사면을 받아 출마에 문제가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논리인데 사법부 판결을 부정하고 정치를 희화화하는 주장이다. 무리수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공천을 밀어붙이려는 무모함이 놀랍다. ‘법을 어겼어도, 상식에 반해도 상관없어. 그저 내 편이기만 하면’이란 메시지로 읽는다면 과연 오독(誤讀)일까.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