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밥 한 끼

입력 2023-08-31 20:39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너의 말에
그래야지 그래야지 얼른 대답했지만
못 먹어 허기진 세월 아니니
어떤 식탁에는 수저보다 먼저
절여진 마음이 차려지리라
애꿎은 입맛까지 밥상머리에 오른다면
한 끼 밥은 한술 뜨기도 전에
목부터 메는 것,
건성으로 새겼던 약속이
숟가락 그득
눈물 퍼 담을 것 같아
괜한 걱정으로 가슴이 더부룩해진다

-김명인 시집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중

밥 한 끼 먹자는 약속을 하고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그 약속이 말 그대로 밥 먹자는 약속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식탁 위에 올라오는 것은 “절여진 마음”일 수 있다. 밥 한술 뜨기도 전 “목부터 메는” 자리일 수 있고, 숟가락으로 밥 대신 “눈물”을 퍼먹어야 할 지도 모른다. 올해로 시력 50년을 맞은 김명인의 열세 번째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