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다른 병원 가셔도 약 꼬박꼬박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82년 역사의 서울 중구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31일 오후 5시부로 모든 진료를 종료했다. 마지막 영업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은 없었다. 의료진과 환자들은 서로 안아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날 방문한 서울백병원 1층 원무수납센터는 진료의뢰서를 받으려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마지막 날까지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은 1층에서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의사 가운과 수술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이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진료협력센터에서 만난 김은경(45) 선임간호사는 눈에 익은 환자들을 보낸 뒤 소지품을 챙기고 있었다. 환자들이 보내준 감사 메시지를 들고 있었다.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아내가 갑자기 아파서 걱정을 많이 했어. 당신이 진료접수부터 의사를 만나는 것, 진료 후에도 도와줘서 고마웠어.” 한중 번역기를 써서 내용이 조금 어색하다고 설명하는 김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씨는 “70대 할머님이 ‘내가 꽃다운 나이에 이 병원에 왔는데 여기가 이렇게 문 닫을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다 가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모(76)씨는 “60세에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이 86세가 될 때까지 이 병원만 다녔다”며 “신경과 선생님은 우리 가족한테 의사 이상의 의미였다. 멘토 같은 분이셨는데 병원이 문을 닫는다니 너무 섭섭해서 울다가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직원들은 수도권과 부산·해운대 백병원 등으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다. 병원 측은 환자 편의를 위해 내년 2월까지 통합발급센터를 운영해 영상기록을 포함한 의무기록 사본 등의 서류를 발급할 예정이다.
1941년 개원한 서울백병원은 서울 중구의 유일한 대학병원이었다. 그러나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 20년간 누적된 적자가 총 1745억원에 달했고, 지난 6월 인제학원은 이사회를 열어 폐원 결정을 내렸다. 폐원을 의결한 인제학원 측과 반대하는 병원 교직원 간의 갈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서울백병원 교수 24명과 직원 240명은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에 폐원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낸 상태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