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철거 앞둔 중청대피소

입력 2023-08-31 04:10

중청대피소는 설악산에 있는 5개의 대피소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상인 대청봉(해발 1708m)과 중청봉(1676m)을 잇는 능선에 들어선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다. 1983년 설치돼 94년 현재의 모습을 갖춘 이 대피소는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대피소 겸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대청봉에서 일출을 감상하려는 탐방객들의 숙박지로 단연 최고 인기를 누렸다.

중청대피소는 대청봉의 길목에 있다. 한계령, 설악동, 백담사 쪽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다 보면 중청대피소를 만나게 된다. 탁 트인 능선에 위치해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대피소 정면에 서면 속초 시내와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고 공룡능선, 화채능선 등 설악의 우람하고 기기묘묘한 뼈대를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대청봉이 지척이고, 뒤쪽으로 가면 ‘천상의 화원’ 곰배령을 품은 점봉산이 눈에 들어온다.

40년 동안 탐방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중청대피소가 다음 달 30일까지 운영되고 10월에 철거에 들어간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이 2017년 처음 밝혔던 철거 방침을 6년 만에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탐방객과 산악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일정을 늦추고 계획을 일부 수정하는 곡절이 있었으나철거는 끝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공단은 시설이 노후화됐고 경관 및 고산지대 환경을 훼손시킨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현 시설을 철거하고 규모를 줄인 새 건물을 짓기로 했지만 숙박과 매점 기능을 없애고 대피소로만 운영한다는 게 공단의 계획이다. 대피소는 유지되더라도 대청봉 인근 숙박이란 가장 큰 강점은 사라지게 됐다. 대청봉 탐방객들의 안전한 산행에도 보탬이 될 리 없다.

설악산의 훼손을 막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더 광범위한 훼손이 불가피한 오색 케이블카 설치의 길을 터준 환경 당국이 중청대피소 용도 변경을 강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중청대피소에 얽힌 추억이 있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