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A씨가 처음으로 손 댄 사업은 관상용 해수어를 키울 때 필요한 설비 제조·판매였다. 평소 취미 생활을 사업 영역으로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발단이었다. 이후 A씨는 어항부터 시작해 적정 수온을 맞추는 기기 등 관련 장비들을 만드는 일에 손을 댔다. 하지만 장비 하나를 만드는 데도 수많은 부품과 공정이 필요한데 각각의 장비를 다 만들려다보니 과부하가 걸렸다. 전문성도, 원천 기술도 미비한 상태에서 시작한 첫 사업은 폐업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폐업의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수억원의 빚을 갚고 나서야 청산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A씨는 “그 때는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자주 되뇌였지만 실제로는 멘붕 상태가 오래갔다”고 회상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A씨처럼 선택의 순간과 마주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A씨는 폐업을 하고 다른 일로 눈을 돌렸지만 그 보다는 어떻게든 사업을 이어가려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늘어나는 게 대출이다. 특히 경기 침체에 성장률이 1~2%대인 저성장 국면을 이겨내려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게 기업들의 현실이다.
문제는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는 점이다. 30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의 전체 산업 대출금 잔액은 1818조4472억원에 달한다. 1년 전(1644조6754억원)과 비교해 10.7%나 늘었다. 대출금 잔액은 코로나19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증대 상황이 맞물리며 수년째 급증하는 추세다.
산업별로 봐도 대출금 잔액이 안 늘어난 곳을 찾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대부분 항목이 지속적으로 빚 덩치를 키우고 있다. 특히 부도 위기에 근접하고 있다는 건설업의 경우 사상 최초로 대출액이 100조원(100조1299억원)을 넘어섰다.
기업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대출금 잔액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경기가 안 좋을 때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대출을 받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출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1분기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278곳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기 힘든 한계기업은 518개에 달한다. 상장사의 40.5% 수준이다.
기업 대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경제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정책 대출 자금을 확대 공급하고 있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윤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1997~1998년 등 3번의 한국 경제·금융위기 원인에는 모두 기업부채가 있었다”면서 “과거 정부의 금융 개입과 과도한 정책적 지원이 대기업 안정성을 저하하고 외부충격이나 경기변동에 취약하게 해 결국 부채위기를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