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목적기반모빌리티(PBV)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광폭 행보에 나섰다. PBV 비즈니스 전문가를 새로 영입하고 해외 PBV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PBV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PBV는 택배차, 택시, 냉동탑차처럼 특정 목적에 맞게 내·외부 디자인과 좌석 배치 등을 한 차량이다. 지난해 기아는 PBV 시장에 본격 출사표를 던졌다. 경기 화성공장 부지 6만6115㎡(약 2만평)에 연간 최대 15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PBV 전용공장을 짓는다. 특히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달 PBV 비즈니스 총괄 책임자로 피에르 마르탱 보 상무를 영입했다. 기업 간 거래(B2B)와 상업용 차량 판매 분야에서 25년간 일한 전문가다. 기아의 글로벌 PBV 비즈니스 전략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다.
기아는 PBV 관련 해외 스타트업 발굴에 나섰다.
미국 버클리대와 손잡고 PBV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산학 협력을 진행한다. 또 현지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와 협업을 통한 개방형 혁신 기업 공모를 통해 배송·물류, 차량 내 공간 디자인, 수요 응답형 모빌리티 서비스 등 13개 분야에서 우수 스타트업을 선정했다. 이스라엘에서도 물류 전문 PBV 스타트업 50여곳을 추렸다. 기아는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연계해 현지 최대 물류 기업 UPS ASC와 협업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두 나라에서 선발한 스타트업에 각각 기술 실증 자금 5만 달러(약 6619만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역량이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스타트업과는 장기적 협업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아가 PBV 시장에 팔소매를 걷은 건 미래차 시대에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콘셉트카 ‘세븐’과 ‘EV9 콘셉트’를 보면 공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두 차 모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지만 실내는 라운지처럼 꾸몄다. 현대차는 세븐의 디자인 콘셉트를 ‘나만의 시간 및 가족과의 시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기아는 EV9 콘셉트의 실내를 ‘탁 트인 라운지’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PBV 시장이 연평균 33% 성장해 2025년 130만대까지 늘 것으로 추산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존 양산차가 기성복이라면 PBV는 특정 산업이나 역할에 맞춰 만든 ‘맞춤정장형 모빌리티’”라고 설명했다.
기아는 한국에서 레이 1인승 밴, 니로 플러스 등 기존 차량의 PBV 파생 모델을 내놨다. 2025년부터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쿠팡의 물류 배송용 차량 등 다양한 형태의 전용 PBV를 선보일 계획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PBV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경량 전기밴 EV600을 만들었다. 도요타는 PBV 전용 ‘이(e)-팔레트’를 도쿄올림픽에서 무인 셔틀로 이용했다. 포드,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도 PBV 개발에 적극적이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