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면서 2년 연속 20조원대의 고강도 예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구조조정의 화살은 ‘관행적 지원’ 문제가 지적된 연구·개발(R&D) 분야와 국고보조금에 집중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모든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약 23조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역대 최대인 24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한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를 위해 1만개 이상의 사업을 들여다보고 예산을 조정했다.
매년 ‘상수’로 증가해온 R&D 예산은 이례적으로 구조조정 1순위가 됐다. 내년도 R&D 예산은 25조9000억원으로 올해 31조1000억원 대비 5조2000억원(-16.6%) 줄었다. 7조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거쳐 이 중 2조~3조원은 다른 사업으로 이관되고 4조~5조원은 삭감됐다. 관련 예산이 급증했는데도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는 점이 구조조정의 배경이다. 2018년 19조7000억원이던 R&D 예산은 연평균 10.9%씩 늘어 올해 30조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R&D 사업수는 653개에서 1254개로 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는 이른바 나눠먹기식 소규모 사업 난립이 R&D 분야에 비효율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성과가 저조하거나 관리가 미흡한 국고보조금 사업도 4조원 규모의 삭감 ‘칼날’을 맞았다. 2018년 66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102조3000억원까지 규모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집행·관리상의 누수 요인 탓이다. 정부는 중복 지원이나 집행 부진이 불거진 사업을 위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부정수급이나 회계관리 미흡이 발견된 사업도 삭감 대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지원금도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정부는 올해 2조5652억원을 배정했던 무공해차 보급사업의 내년 예산을 2조3988억원으로 올해보다 1600억원가량 줄였다. 전기차 보조금 단가를 현행 500만원에서 100만원 인하하는 데 따른 감액이다. 이미 전기차 보급률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다만 올해 67만대 수준인 전기차 보급 대수를 내년 96만6000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29일 예산 구조조정과 관련해 “1989년 4메가 D램 반도체 개발과 같은 파급력 있는 성과 창출이 저조하다”며 R&D 분야의 성과 부진을 지적했다. 하지만 단기적 실패를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첨단 분야 기술 개발에서 단기 성과가 없다고 예산을 깎는 것은 자충수를 두는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R&D 분야의 예산 삭감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수출 부진과 반도체 업황 악화로 내년에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신산업 육성의 중요성이 한층 커진 상황이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