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회사채 발행 어려워진 기업들 ‘급전’으로 버틴다

입력 2023-08-30 04:03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이 최근 늘고 있다. 고금리 국면이 길어지면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단기 빚을 내는 셈이다. 기업의 과도한 단기차입금 증가는 재무 구조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29일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단기차입금 증가결정’을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는 39곳, 코스닥 상장사는 62곳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4월부터 이날까지 단기 빚을 늘린 기업은 59곳으로, 올해 1분기 대비 40%가량 증가했다.

단기차입금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자금을 빠르게 조달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빌리는 돈이다. 일반적으로 재무 상태가 안정적인 상장사들은 회사채 발행을 선호한다. 돈을 빨리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대신 장기적으로 차입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회사채 금리가 오르면서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된 기업들이 고육지책으로 단기차입금을 통해 유동성 부족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 회사채 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3월 하순부터 약 2개월간 연중 최저치에 가까운 연 3.20∼3.30%를 유지하다가 5월 하순부터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시사하면서 크게 올랐다. 연 4%대 초반이었던 회사채 조달금리(3년 무보증 AA- 기준)도 현재 연 4%대 중반까지 오른 상황이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은행의 기업 대출 만기는 보통 1년으로 회사채보다 만기 기한이 짧다. 기업들이 단기 대출로 금리 인하 시점까지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4조원이다. 1분기에 9조7000억원 순발행됐으나 4∼7월에는 5조7000억원 순상환됐다. 순상환이 늘어난 상황은 회사채 발행보다 회사채 상환 규모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기업의 은행 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7월까지 20조3000억원 늘었다.


문제는 단기로 돈을 빌리는 일부 기업이 부실한 재무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단기차입금을 늘린 효성화학의 단기차입금 대비 자기자본비율은 3819%에 육박한다. 코스맥스엔비티(357%) 팜스코(236%) 일진디스플(180%) 등 차입금 비중이 100%를 넘기는 상장사도 많다. 앞으로 부실 위험이 있는 기업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운 만큼 단기차입금 급증이 기업의 재무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차입금 비중이 높은 기업은 재무안정 불안 요소를 안고 있는 만큼 해당 종목 투자시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