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역사공원’ 놓고 보훈부-광주시 갈등 격화

입력 2023-08-30 04:08
정율성이 유년기에 다녔던 전남 화순군 능주초등학교에 29일 흉상이 설치돼 있다. 항일무장단체 의열단 출신이자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역사공원 조성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놓고 국가보훈부와 광주광역시의 갈등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직을 걸고 저지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강기정 광주시장은 보훈부에 국론을 분열하지 말라고 맞서는 상태다.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이례적인 이념 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있다.

박 장관은 29일도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 페이스북에 “국민 혈세는 단 한 푼도 반국가적인 인물에게 쓰여선 안 된다”며 “호남을 빛낸 인물들이 수없이 많은데, 굳이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를 세금을 들여 기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썼다. 또 강기정 광주시장을 겨냥해선 “인민군을 인민군이라고 말하는 것, 김일성 나팔수에게 세금 쓰지 말라는 게 이념공세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혈세는 대한민국 존립과 국익에 기여한 분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국가보훈부는 순천역 광장에 호남 학도병을 기리는 현충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강 시장과 광주시의회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강 시장은 전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은 광주시민이 뜻을 모아 해온 일이고 전 세계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광주시 차원이든 하나도 부끄럽거나 잘못된 사업이 아니다”며 “당당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율성 기념사업은 30여년 전 정부가 시작했고 민선 6·7·8기까지 이어온 사업”이라며 “보훈부는 오랜 기간 대한민국 정부도, 광주시민도 역사 정립이 끝난 정율성 선생에 대한 논쟁으로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고 비판했다. 광주시의회도 성명을 내고 “윤석열정부는 철 지난 색깔론과 이념몰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 단체들의 찬반 논란도 계속 가열되고 있다. 4·19혁명 3개 단체인 민주혁명회·혁명희생자유족회·공로자회와 8개 보훈단체는 30일 낮 12시 광주시청 앞 광장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반대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 집회에는 5·18 민주화운동 공법단체인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도 참여한다. 이들은 정율성의 과거 행적을 지적하며 기념사업 전면 철회와 강 시장과 면담을 촉구할 예정이다.

반면 광주지역 9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시민협은 성명에서 “보훈부와 국민의힘 등은 정율성이 의열단, 조선의용군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한 역사는 외면하고 그의 생애 중 한 단면만 부각해 매도한다”고 주장했다.

광주 출신인 정율성(1914~1974)은 의열단 소속으로 항일운동을 하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인물이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 활동을 한 후 중국으로 귀화했다. 광주시는 정율성의 생가(동구 불로동)를 복원하고 역사공원을 만들어 대규모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8년부터 관련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시는 48억원을 들여 내년 초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