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사이자 의학자인 조너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한 사람입니다. 그는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아 백신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 덕분에 인류는 소아마비의 공포로부터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백신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실패했을 때의 감정을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실패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소아마비 백신이 효과가 없는지 한 가지 방법을 발견한 것뿐입니다.”
실패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그 사건에 대한 해석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런 좌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물에 빠진 베드로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베드로의 실패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물 위를 걸어본 사람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실패자는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 경험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을까요. 풍랑 중에 걸어오시는 예수님께 베드로는 이렇게 요청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당시 제자들은 밤새 풍랑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다에 잔뼈가 굵은 제자들이었지만 풍랑 가운데 그들은 지치고 낙심하고 있었을 겁니다.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풍랑이 그치는 겁니다. 눈앞의 고난이 사라지는 겁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풍랑을 잠잠하게 해 달라고 구하지 않고 물 위로 오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의 마음속에는 ‘나도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는 갈망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여전하지만 예수님처럼 되고 싶고 물 위를 걷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가 가졌던 열망을 오늘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인생의 고난이 지속되지만 ‘나도 예수님처럼 되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어느 피란민 부부에게 오인호(1931~1958)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당시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10대 살인 강도에게 피살당합니다.
당신이 그의 부모였다면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살인자가 예수님을 알게 해 달라는 탄원서와 함께 돈과 부쳤습니다.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고 기독교학교 학비를 대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부부는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용서를 베풀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오씨의 죽음 이후 필라델피아시는 ‘오인호 기념 장학금’을 마련했습니다. 이 장학금으로 한국 학생 두 명이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부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풍랑 가운데서도 물 위를 걷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나요. 고난이 그치기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고난 중에도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날의 베드로처럼 풍랑 중에도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양승언 목사(서울 다움교회)
◇다움교회는 제자훈련과 선교적 교회의 비전을 가지고 서울 일원동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서울 중동고 강당을 빌려 예배드리며 지역사회를 위해 영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정 3분의 1은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