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구원의 신비

입력 2023-08-29 03:06 수정 2024-02-29 16:20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롬 1:7)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인데, 먼저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이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은 ‘신비’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신비인 것은 이스라엘의 우둔함으로 인해 저들이 멸시했던,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됐다는 점입니다. 전에는 불순종의 백성이었던 이방인이 거꾸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선택은 후회하심이 없는 신실한 것이기에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은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롬 11:29) 바울은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이스라엘)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이스라엘)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11:31)고 하면서 구원의 대상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됐지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는’ 마지막 때에는 이방인과 함께 불순종의 이스라엘도 구원의 행렬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강해’에서 바르트는 이렇게 예전에 순종하지 않았던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여시고, 때가 이르러 이스라엘에도 긍휼을 얻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종말적 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버려진 자로 구원을 받았고, 의롭게 될 수 없는 자가 의롭게 되고, 죽은 자들로부터 깨어 일으켜짐을 받게 되는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 구원의 신비의 본질은 불가능에서 가능을 바라보게 하는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그 가능성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적 가능성이라는 이 구원의 신비를 이루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방인이든 이스라엘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는 불가능의 올무에서 해방돼 가능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이루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제자의 온 무리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 19:38)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 영접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제자를 책망하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고 하셨습니다. 종려주일의 제자들이 왕 되신 주의 구원을 외쳤고 이어서 사도바울이 주의 구원을 전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의 구원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구원의 신비를 전하며, 종말적 가능성으로 위기의 세상에 꿈과 희망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성수 목사(강동교회)

◇강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된 교회로 1978년 장성룡 원로목사가 서울 암사동에 개척했습니다. 강동교회는 영혼 구원에 매진하며 이웃사랑에 문을 여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