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독립문교회(김성희 목사)는 한양도성 성곽에 맞닿은 행촌동 주택가 한복판에 있다. 서대문역에서 10여분간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거쳐 언덕배기를 오르면 42년 역사를 품은 아담한 교회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적벽돌 건물에 녹색 문설주를 덧댄 출입구엔 교회 이름과 함께 ‘살림의 집’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생명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는 곳’이란 의미로 ‘살림의 집’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정신건강·가족 문제 상담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 모임 공간으로 활용하는 곳이거든요.” 지난 24일 교회에서 만난 김성희(62) 목사의 설명이다. 12년 전 교회에 부임한 그는 교인들과 ‘행촌권역 도시재생사업’과 ‘도시농업공동체’, 지역활동가 연대모임인 ‘인왕마을 네트워크’ 등 마을 공동체 활동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우리 동네 텃밭과 육묘장, 양봉장에선 ‘장로님’ ‘목사님’ 호칭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을 일을 사역처럼 섬기고 있어 ‘마을 장로’ ‘마을 목사’란 마음가짐으로 지냅니다.”
마을은 우리의 교구
교회가 ‘마을 사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김 목사 부임 이후부터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김 목사는 부임 이듬해 주민 대상으로 욕구 조사를 진행했다. 독거 어르신이 많이 주거하는 지역 특성상 ‘이·미용 봉사’ ‘의료 봉사’를 원한다는 답변이 다수였다. 3040세대는 자녀를 위한 ‘방과 후 수업’과 독서교육 등 ‘부모 코칭’ 프로그램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치과 무료검진과 이·미용 무료봉사, 어린이 토요특강 및 부모 교육 세미나를 마련해 지역사회에 교회를 개방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는 ‘독거 중년’과 주부가 지역 내 적잖다는데 착안해 2013년 살림의 집을 열고 상담에도 나섰다. 알코올 중독으로 사회와 소통을 거부하는 4050 주민 40가구에 정기적으로 가가호호 도넛을 전달하는 ‘사랑의 빵 나눔’ 사역도 펼쳤다.
이들 사역은 교회의 마을 사역에 발판이 됐다. 김 목사의 활동을 눈여겨본 한 마을활동가가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것을 제안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종로구 마을공동체 사업에 합류한 그는 여러 마을활동가와 2014년 인왕마을 네트워크를 창립하며 마을강좌와 경로·마을잔치, 성곽마을 탐방 프로그램 운영에 동참했다.
2015년엔 서울시가 행촌동 일대에서 도시 재생을 위한 도시농업을 선보이자 김 목사뿐 아니라 교인들도 이에 적극 동참했다. 도시농업공동체 교육과 주민 워크숍을 위해 교회 공간을 제공했고, 육묘장과 양봉장 사업엔 그를 비롯한 교회 성도가 여럿 참여했다. 교회 인근에 조성된 서울시 행촌공터 1~3호점 운영에도 성도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이날 교회에서 만난 신서현(66) 권사는 현재 마을활동가이자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 권사는 “20년 넘게 이 동네에 살았지만 정작 마을 일엔 관심이 없었는데 김 목사의 제안으로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며 “각종 모임과 워크숍, 세미나가 열리면서 비기독교인 이웃도 자연스레 교회를 찾는다. 이젠 교회가 아닌 마을 쉼터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했다.
이웃 교회·종교와 마을을 윤택하게
전 교인이 35명인 독립문교회가 여러 마을 사역을 펼칠 수 있던 데는 주변 교회와의 협력도 한몫했다. 교회가 몸담은 ‘교남동협의회’는 종로구 교남동 관내 7개 교회가 소속돼 있다. 이들 교회는 각각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고신 통합 합동)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한국구세군 소속으로 모두 교단이 다르다. 그럼에도 ‘통장 초청 간담회’ ‘따뜻한 겨울나기 후원’ ‘병원과 함께하는 건강밥상 차리기’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치며 지역사회 현안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마을 사역은 종교도 초월해 이뤄진다. 교회는 인왕마을 네트워크에 속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부설 ‘독립문평화의집’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산하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등과 협력해 매년 6월 마을 축제를 연다. 김 목사는 “우리 마을 노래자랑엔 목사 신부 승려가 같이 심사를 본다”며 “마을 일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서로 친하게 지낸다. 이 때문에 우리 동네는 종교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환대로 벽 허물 때 희망이 보인다
목회자, 진로상담가, 마을활동가 등 여러 역할을 맡은 김 목사는 내년엔 ‘기장 총회 서울노회장’이란 직함 하나를 더 추가한다. 신 권사는 “여성이지만 추진력 하나는 정말 뛰어난 분이다. 이곳에 부임해서는 2년에 한 번씩 노후된 환경 개선을 위한 공사를 했다”고 귀띔했다.
다양한 역할로 마을을 섬기는 그에게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다. 김 목사는 “예수가 말씀한 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는 “예수의 성육신 자체가 자신이 아닌 이웃과 세상을 위한 것이다. ‘타자를 위한 환대’가 교회의 기본 정신인 이유”라며 “이 기본을 잃으면 교회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교회를 세상에 맞추려 말고 예수처럼 세상을 위해 열린 교회가 되도록 같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