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라덕연’ 막아라… 금감원 현장조사권·영치권 회복 청신호

입력 2023-08-28 04:04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감독원에 강제조사권을 다시 돌려주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늘어나는 불공정거래의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자본시장 감독 최일선에 있는 금감원의 조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실효성 있는 증권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선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사후적 조치뿐 아니라 사전예방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7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원회, 금감원, 거래소 등으로 구성된 비상조사심의협의회는 금감원에 현장조사권, 영치권(자료 압류권)을 위탁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금감원의 조사 인력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당국 간 협조를 강화해 자본시장 내 불공정거래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이 협의회는 ‘라덕연 사태’ 등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대응 체계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회의체로 지난 6월 꾸려졌다.

금감원의 주요 조사 권한은 최근까지 축소돼 왔다. 2004년 감사원 지적에 따라 압수·수색권한을 가진 조사공무원 겸임이 금지된 게 시작이었다. 민간기구가 국민기본권, 재산권 등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2009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그나마 갖고 있던 현장조사권, 영치권도 제외됐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불공정거래 사태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금감원의 권한 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현재 금감원은 현장 조사권이 없어 금융거래정보 요구, 자료제출 요구 등 임의조사 수단을 통해 검사를 벌이고 있다. 즉각 대응이 어려워 초기 대응을 위한 ‘골든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되는 대표적 사례가 ‘라덕연 사태’였다.

사실상 사문화된 금융위·금감원의 공동조사 체제도 금감원의 권한 강화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2013년 자본시장조사단 설치를 계기로 당국 간 조사 공조를 강화하려고 했으나 실제 공조로 이어진 경우는 최근 KB국민은행의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 이외 전무했다.

이런 논의가 활발해진 배경으로 ‘이복현 체제’를 꼽는 시각도 있다. 금감원은 이전에도 꾸준히 자본시장법 개정을 요청하며 권한 강화를 주장해 왔지만, 관련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 실세인 검사 출신 이 원장이 금감원의 조사권 강화 주장에 힘을 보탰다는 해석이다.

다만 금감원 검사가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로 비칠 수 있다. 과거 감사원의 지적 사례처럼 국민의 기본권 등을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민간기구에 위탁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일각에선 증권범죄 재발방지를 위해선 사전 예방에 대한 검토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의 권한 및 검사협조 체계 강화 등이 사후적 제재 방안에만 치중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국정감사이슈분석’ 보고서에서 “불공정거래 조사결과 등의 공표제도 및 모니터링 협조 강화, 신고 포상금 제도 활성화 등의 방안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