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가계·기업·정부의 급증한 부채로 휘청이고 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기업의 돈줄이 막혀 기업부채가 증가한다. 기업의 빚이 증가하면 세수가 줄고 국가부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연쇄효과를 일으키는 3대 부채를 잡지 않으면 경제성장률 하락과 경기 침체, 국가신용도 저하뿐 아니라 심할 경우 국가 파산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경기 침체 발생 확률이 늘어난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을 경우 이런 위험성이 더 커진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1450조원에 그쳤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1867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동안 이어진 저금리 기조에 대출이자 부담이 줄었고, 주택시장 활황으로 주택자금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 한은의 ‘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3년 누적)이 1% 포인트 오를 경우 4~5년 시차를 두고 GDP 성장률(3년 누적)은 0.25~0.28% 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1960~2020년 39개국 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한은은 가계빚이 계속 누적될 경우 3~5년 시차를 두고 연간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특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80%를 넘을 경우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관측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대출이 많으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소비도 덩달아 위축되면서 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한국의 가계부채는 대부분 주택 구매 목적이라 기업 투자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이 적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1%에 달한다. 정부와 한은은 이 비율을 80%까지 연착륙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부채도 가계부채만큼 위험하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정부가 돈을 빌린 대가로 지급해야 하는 이자 부담이 증가한다. 그만큼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쓸 수 있는 돈이 줄고,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하락까지 이뤄지면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국가 파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국가부채 관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2326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전년보다 130조9000억원(6.0%) 늘었다. 같은 기간 국가채무는 970조원에서 1068조원으로 뛰었다.
전문기관들은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10년 뒤에 국가신용등급(무디스 기준)이 한 단계 강등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국가부채비율과 국가신용등급 및 성장률 간 관계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가부채비율이 지속 상승할 경우 한국은 2032~2033년에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임계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경연은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락하는 국가부채비율 임계치가 68.6~69.5%라고 분석했다. 올해부터 한국 국가부채비율이 연간 2.81%로 상승하면 2032년 국가부채비율은 68.7%에 달할 전망이다. 국가신용등급이 무디스 기준 ‘Aa2’에서 ‘Aa3’로 강등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0.58% 포인트 낮아지고 11조원에 달하는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경기 침체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에 손을 내밀면서 기업부채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사업을 위해 기업들이 빚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기업의 연체율이 높아질 경우 금융위기까지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부채는 지난해 2590조원에 달했다. 1년 전(2355조원)에 비해 10%나 껑충 뛰었다. 특히 대기업 대출 증가율은 2021년 4분기 2.5%에서 지난해 4분기 18.2%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5대 은행의 기업 대출잔액 역시 지난 1월 707조원에서 5월 725조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이후 금리가 급등하면서 회사채 발행 등 자본시장에서 조달이 여의치 않은 기업들이 은행 문을 두드렸다. 한전이나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 과다 발생 사태도 기업부채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 수출 악화 등으로 기업 경영이 위축된 상황에서 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 금융위기 때마다 기업부채가 원인이 됐다. 전문가들은 기업부채 증가에 따른 매출 하락, 유동성 악화 등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43%로 지난해 같은 기간(0.27%)보다 0.16% 포인트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 연체율이 0.51%로 같은 기간 0.22% 포인트나 상승했다. 경기 악화로 연체율이 더 오르면 기업 파산, 은행 건전성 훼손 등으로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