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열린 음악회’ 지역 명물로… 주민과 아름다운 동행

입력 2023-08-28 03:01 수정 2023-08-28 13:58
남녀 합창단원들이 27일 경기도 고양 위스테이지축아파트 잔디밭에서 열린 오솔길교회 주최 제 4회 노을음악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오솔길교회 제공

음악회 시작은 교회 발코니에서부터였다. 2층에 있는 교회 창가에 자그마한 발코니가 있는데 야외에 의자를 놓고 올려다보자 여느 공연장 부럽지 않은 무대가 됐다. 유명 뮤지컬 배우 이태원 민영기씨를 비롯해 유수의 음악가들이 창문을 통해 발코니로 나가 지역주민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발코니에서 시작한 오솔길교회(김범기 목사)의 ‘노을음악회’는 이제 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가 됐다.


2017년부터 격년으로 음악회를 열고 있는 오솔길교회는 개척 7년차 작은 상가교회다. 교인 수도 5가정 16명밖에 되지 않는다. 김범기 목사는 파킨슨병으로 9년째 투병 중인 환자인데도 왕성한 섬김 사역을 하고 있다.

오랜 병마로 인한 언어장애로 김 목사와의 인터뷰는 27일 서면으로 진행됐다. 그는 “지역과 함께하는 게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시작한 사역”이라며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공연을 보면서 ‘문화적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게 큰 수확”이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부목사로 사역하던 2015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목회를 쉬면서 2년간 치료를 받았지만 영혼 복음화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지기만 했다. ‘아픈 나의 몸이라도 쓰시겠다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경기도 고양에 오솔길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그는 ‘숲길지기’가 돼 지역주민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시·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솔개어린이야구단’을 운영하기도 하고 ‘어린이 그림 그리는 날’을 개최했으며 지역신문 ‘오솔길 이야기’도 발행했다. 그중에서도 노을음악회는 발코니에서 아파트 광장으로 또 잔디밭으로 그 규모가 커졌다. 음악을 전공한 그의 인맥을 총동원해 성악가와 악기 연주자들이 초대됐고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음악회가 끝나면 주민들은 공연의 수준에 놀라고 작은 개척교회가 주최했다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김 목사는 “우리 교회에 꼭 나오라는 게 아니라 ‘교회가 이런 일도 하고 있구나’ ‘교회가 좋은 곳이구나’라는 걸 주민들이 알게 된다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이날 아파트 잔디밭에서 열린 제4회 노을음악회는 공연자 50여명과 스태프 30여명이 함께 준비한 무대였다. 주민들은 늦여름밤의 음악회를 마음껏 즐겼다. 규모가 커지면서 실내 공연장에서 음악회를 열 수도 있었지만 김 목사는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광장이나 잔디밭을 고집한다. 노약자나 장애인, 어린아이를 둔 부모 등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목사는 차로는 갈 수 없는 오솔길을 예수님과 천천히 걸어가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천천히 걷다 보면 꽃도 보게 되고 작은 풀벌레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음악회를 열고 미술대회를 여는 거죠.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