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만지작거리자… 50년 만기 주담대 한달 만에 2兆 불어났다

입력 2023-08-28 04:04
한국부동산의 8월 3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주 연속 상승하고, 지방 아파트 가격도 작년 5월 이래 15개월만에 상승전환했다. 사진은 27일 서울의 한 부동산 실거래 내역 안내문. 이한형 기자

5대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이달에만 2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연령 제한 등 규제 카드를 검토하면서 소비자들이 서둘러 대출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지난 24일 기준 2조8867억원으로 지난달 말(8657억원)보다 2조210억원 불었다. 특히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세 주범으로 지목되고, 연령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지난 13일 이후에만 1조872억원이 늘었다. 대출 제한이 생기기 전 ‘막차’를 타려는 심리가 수요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한 마디로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이다. 지난 1월 수협은행이 처음 선보인 뒤 은행들이 지난달 경쟁적으로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만기가 길어지면 대출한도는 높아지고 은행에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은 줄어드는 장점이 있지만, 금융당국은 총소득에 따라 대출한도가 정해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봤다.

금융당국은 이달 말부터 은행들을 상대로 가계대출 취급실태 종합점검에 돌입했다. 지난 24일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약 한 달 동안 순차적으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절차를 살펴볼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이 5대 은행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금감원은 3명의 감사 인원(은행감독국 2명·은행검사국 1명)을 각 은행에 파견해 대출 규제 준수 여부, 담보 가치 평가·소득 심사 등 여신심사 적정성, 가계대출 영업전략·관리체계, 고정금리·분할 상환 방식 등 질적 구조 개선 관리 현황, 가계대출 관련 IT(정보기술) 시스템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점검은 은행들에게 가계대출을 자제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일부 은행은 ‘눈치껏’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농협은행은 한도 소진을 이유로 이달 말까지만 50년 만기 상품을 팔기로 결정했고, 경남은행도 28일부터 같은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나이 제한 등 조치를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은행들도 있다. 수협은행과 카카오뱅크는 최근 ‘만 34세 이하’ 나이 제한을 뒀고, 대구은행도 이달 중 연령 제한을 도입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차원의 50년 만기 주담대 관련 지침 발표 시점은 미정이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취급 중지나 연령 제한이 아니라 DSR 산출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약정 만기가 50년이라고 해도 DSR을 계산할 때는 30년 혹은 40년을 적용해 대출한도를 늘리는 것을 막는 방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DSR 계산 때 축소된 만기를 적용하는 것 등을 포함해 여러 대안을 놓고 어떤 방식이 가장 적합한지 논의 중”이라며 “불확실성이 오래 지속되면 좋지 않으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관련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