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는 지난 3월 3일 저녁 “뉴스 좀 확인해 보라”는 지인의 다급한 연락에 휴대전화를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친딸이 그날 경기도 용인 죽전역에서 칼부림 난동을 저질렀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딸은 조현병을 앓아 왔다.
이후 분당 서현역 인근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등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도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치료를 중단한 환자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죽전역 사건 가해자의 부친인 김씨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딸도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최근의 사건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딸에게 처음 조현병 증세가 나타난 건 약 20년 전인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다 죽여버리겠다”며 소리를 지르는 일이 벌어진 이후로 증세는 점차 심해졌다. 딸 김씨는 결국 대학 입학을 앞두고 3개월간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았다. 퇴원한 딸의 상태는 놀랍게 호전돼 있었다. 대학 생활도 원만히 할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치료를 계속 이어가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집안 사정상 혼자 살게 된 딸은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약 복용을 중단했다. 이후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하고, 나아지면 퇴원하는 일이 반복됐다.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됐다.
죽전역 흉기 난동 당시에도 딸 김씨는 치료를 중단한 채 자신을 병원에 입원시키려는 아버지를 피해 다니던 중이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한 남성과 시비가 붙은 뒤부터 흉기를 지니고 다녔다는 그는 죽전역에서 자신에게 “조용히 해 달라”는 승객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부친 김씨는 “‘딸을 계속 데리고 다녔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이어지면서 지속적 치료와 사회적 관리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돌봄의 책임을 개별 가족에게만 전담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50대 이모씨 역시 20여년 전 아내에게 조현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뒤로 순탄치 않은 날들을 보냈다. 다행히 입원치료와 약물치료로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지내고 있지만, 이씨 마음에도 병이 생겼다. 그는 몇 년 전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았다.
이씨는 최근의 강력범죄 탓에 ‘정신질환자=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는 “모든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 것처럼, 사회에서도 조현병을 제대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통계연보를 보면 2021년 정신장애(질환) 범죄자는 8850명으로 전체 범죄자 중 0.7% 수준이었다. 지난 5년간 추이도 정신장애 범죄자는 연간 7000~9000명으로 0.5~0.7% 수준에 머물렀다.
전문가들도 정신질환은 치료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며 사회적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성완 대한조현병학회 정신보건이사는 “처음 조현병 발병 시 약을 먹으면 보통 수개월 이내에 70%는 개선된다. 그런데 증상이 사라지면 이후 약 먹을 필요성을 못 느껴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 경우 재발 가능성은 95%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교육을 해 환자의 재발을 낮춘다”면서 “우리나라도 약 복용의 필요성 등에 있어서 환자와 가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