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가 경험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고통의 신음이 들렸다. 나는 이 소리를 교회뿐 아니라 내가 섬기는 사역 현장에서도 들었다. 가는 곳마다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했던 시절이다. 주로 예레미야애가 말씀으로 위로와 격려를 전했던 기억이 난다. 외환위기는 내가 이끌던 문서 사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 ‘프리즘’이 폐간됐고 뒤이어 10여년간 펴낸 ‘일하는 제자들’도 간행을 중단했다. 정말 아쉽지만 이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받아들였다.
위기가 가장 실감 났던 건 이랜드 현장이었다. 위기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본의 아니게 직원을 정리해고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직원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직원과 가족처럼 지내던 회사의 근간이 흔들린 사건이다. 창업 이래 가장 큰 위기였지만 공동체 의식으로 위기를 어렵지 않게 극복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가 자금을 구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당시 대부분 기업이 자금난으로 고통받았는데 이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해진 기일까지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부도날 위기에 처했다. 특별한 뒷배경이 없는 기업이 이때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랜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회장 이하 임직원은 기도원을 찾아 기도했다. 기도제목은 아주 단순했다. “회사를 살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을 주십시오”였다.
기도에 힘쓰다 쉬는 시간에 회장에게 물었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냐”고. 이때 회장의 대답을 듣고 나서 기도할 의욕이 사라졌다. 당시 400억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런 거액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훗날 이랜드 몇몇 기업에 투자 의향을 보인 미국 투자회사들의 투자로 자금경색은 풀렸다. 이때 투자금이 400억이었다고 한다. 거짓말 같은 기적의 이야기다.
분명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을 베풀면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기업 현장에서 기도의 힘을 느낀 사건이다. 위기의 순간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과 비슷한 기적이다. 이 경험으로 일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도 응답해준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때때로 일터에서 기도를 잘못 사용하는 때도 있다. 개인이 세운 목표나 기업의 매출 목표를 달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자칫 기도가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무엇이든 구하면 하나님이 들어준다’고 했지만 이런 경우는 기도가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런 경험으로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기도는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