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개혁이 재판 지연 등 부작용 불러… 사법시스템 정비 시급

입력 2023-08-24 04:08 수정 2023-08-24 21:25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3일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최근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다음 달 24일 임기를 마치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목돼 온 건 ‘재판 지연’이다. ‘사법농단’ 사태 속에 사법부 수장에 오른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줄이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는 등 사법 민주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개혁은 결과적으로 법원 구성원 사기 저하와 사건 적체로 이어졌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23일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며 대법원장이 됐지만 새로운 질서는 세우지 못했다”고 ‘김명수 코트’ 6년을 평가했다. 사법 시스템을 정비해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차기 대법원장의 일차적 과제이기도 하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전국 법원 민사합의부가 1심 본안사건을 처리하는데 걸린 평균 기간은 364.1일에 달했다. 김 대법원장 취임 첫해인 2017년(293.3일)보다 약 70일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형사합의부 1심 공판사건 처리 기간은 구속 사건 118.4일, 불구속 사건 168일에서 구속 사건 138.3일, 불구속 사건 217일로 늘었다. 2년을 초과하는 장기 미제 사건도 같은 기간 합의부 1심 기준 민사는 109.4%, 형사는 84.7% 급증했다.


재판 지연은 김 대법원장이 밀어붙인 제도 개혁의 부작용이 맞물린 결과라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평가다. 우선 ‘법관의 꽃’으로 불렸던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가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는 법관의 관료화, 대법원장의 비대한 인사권 등이 문제로 지목돼 2020년 국회 입법을 통해 폐지됐다. 그 결과 사법부 내 수평적 문화가 정착됐다는 평도 있지만, 사실상 법원 내 유일한 승진 통로가 대안 없이 사라지면서 판사들 업무 동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법관 인사 이원화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되면서 고법 판사들이 지방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통로도 막혔다.

보상 없는 인사가 사법부 인력 유출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마땅한 보상을 받아야 법원에 남아 국민에게 도움 되는 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법관 인사였던 올 상반기 인사를 앞두고도 고법 판사 15명이 법원을 떠났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판사 스스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보다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정착해 재판의 속도는 물론 질도 저하됐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을 목표로 내걸고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 수를 3분의 1로 줄이는 등 권한과 역할을 축소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재판 적체와 흔들리는 시스템을 바로잡을 사법행정의 부재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사실상 자기 팔다리를 잘라놓고 (임기를) 시작한 셈”이라며 “법원이 그래도 행정을 하려면 대안이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자리 잡은 개별 법관의 독립성과 수평적 문화를 거슬러 과거로 회귀하는 방식은 내부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는 부작용도 있었던 만큼 예전 제도의 부활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고법 판사는 “동기 100명 중 서너 명만 할 수 있는 고법 부장판사가 되지 못하면 법원장, 대법관 등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시스템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관은 “예전으로 회귀하긴 어렵겠지만, 1·2심 법원 이원화는 변형시키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손보는 등 차기 대법원장이 어떤 형태로든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경환 대법관은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재정적으로 또는 인사상으로 열심히 적시에 사건을 처리한 판사에게 보상을 주고, 업무를 태만히 하고 처리가 지연된 판사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