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교직 생활을 하며 안정적인 가정을 일군 그로서는 굳이 ‘고밍아웃’(고아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할 필요가 없었다. 2020년 책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에 이어 지난해 ‘행복한 고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출간한 이성남(46) 한국고아사랑협회 대표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곁에서 선배이자 멘토로 지원군 역할을 한다. 그는 지난 14일부터 1박2일간 부산 해운대 등지에서 협회 주최로 자립청년을 위한 힐링 캠프를 진행했다.
내가 ‘고밍아웃’한 이유
“사실 책을 내면서까지 저의 가정환경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매년 명절 후 동료들이 가족과 보낸 이야기를 할 때면 어디에 가서 숨고 싶었죠. ‘고아 출신’ 꼬리표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게 너무 억울했어요. 저도 이렇게 주변 의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제대로 자립하지 못한 후배들이 숨어 사는 현실을 보게 됐죠. 저를 드러내고서라도 고군분투 중인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면 기회가 열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대표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일보와 삼성이 공동기획한 ‘희망디딤돌 캠페인’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지난해부터 자립청년에 대한 국가·사회적 관심이 이전보다 높아진 상황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자립 의지가 있는 청년뿐 아니라 경계성 지능 장애가 있는 자립청년 등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이제는 자립청년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며 “시설에서부터 받기만 하고 수동적 삶을 영위하는 청년들이 그저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라며 자립청년의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자립 의지가 있는 청년에게 지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경계성 지능 장애를 가졌거나 시설 퇴소 후 연락을 끊고 사는 자립청년 등에게도 지원의 손길이 닿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유흥업소 종사자나 노숙인 가운데 보육원 출신이 많은 만큼 무연고자들과 소통하며 이들을 이끌어주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희망의 끈 ‘보육사 엄마’
그는 가정을 이루며 진정한 자립에 이르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다섯 살 나이에 입소해 20여년간 지낸 보육시설에서의 단체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보육시설에선 형들에게 맞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며 “가출하고 싶어도 다시 잡혀 들어온 시설 후배들을 보며 매일 절망했다”고 회고했다.
보육 시설에서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긴장된 삶을 살다 보니 학교 가는 게 좋았던 그였다. 그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나거나 친구들로부터 놀림도 당했지만, 학교에서 궂은일을 할 땐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자연스럽게 잘했다”며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동경했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보육시설 생활 속에서도 책 제목처럼 자신을 ‘행복한 고아’라 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역할을 한 많은 보육사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많은 보육사를 만나면서 ‘많은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며 “특히 대학 시절 만났던 보육사가 친엄마처럼 저를 잘 이끌어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힘들 때마다 이 대표를 지탱해준 또 다른 자양분으로는 신앙의 힘이 있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자는 것을 좌우명으로 살았다.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형이 되지 말자고 늘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교육자에서 자립준비청년 운동가로
악바리 근성으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길이 조금씩 열렸다. 그는 영남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부터 20년간 체육 교사로 근무했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놓인 제자들을 볼 때마다 묵묵히 보듬어주며 이들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 지난해부터는 장학사로 근무 중이다. 교육자로 평범히 살던 그가 자립청년을 위한 실무에 뛰어든 건 2018년이었다.
“보육시설을 퇴소한 우리를 ‘보호종료아동’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이들의 필요를 누구보다 더 이해하고 도울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협회를 설립했죠.”
사회적 편견 극복 시급
협회는 보육원 아동과 자립청년을 위한 정책·입법 연구 활동, 복지, 인식 개선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는 자립청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아직도 미디어 매체에서 ‘고아 주제에’ ‘근본도 없는 사람’ 같은 언어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보육원 아동의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부모와 헤어져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이유로 부모와 헤어지게 됐고 현재 어떤 삶을 사는지 우리 모두 알아야 합니다. ‘장애인식개선교육’처럼 모든 사람이 ‘보호아동이해교육’을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시급합니다.”
글·사진=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