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4900원→8만600원… “조직 혁신·업황 호전 맞아떨어져”

입력 2023-08-25 04:05
조석 HD현대일렉트릭 사장이 지난 22일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에 자리한 HD현대 글로벌연구·개발(R&D)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말에 부임한 조 사장은 미국 반덤핑 관세소송, 저가 수주 전략 탈피, 신규 사업 진출, 인수·합병(M&A) 등에서 성과를 보였다. 최현규 기자

‘1545%’. 지난 3년의 경영 성적을 증명하는 숫자(주가 상승률)다. 지난 2020년 3월 19일 종가 4900원으로 바닥을 찍은 HD현대일렉트릭 주가는 올해 7월 25일에 8만600원까지 16배 치솟았다. 2019년에 -8.8%까지 추락한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6.3%로 올라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극심한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가 어떻게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조석 HD현대일렉트릭 사장을 지난 22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신사옥 HD현대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에서 만나 비결을 들었다.

조 사장은 “올해에만 두 차례 수주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는데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해 연간 수주 목표를 19억4800만 달러에서 31억8600만 달러로 올렸다. 조 사장은 “특히 미국 변압기 시장이 호황이다. 2028년 납기 물량을 요구할 정도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생산을 늘려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HD현대일렉트릭은 울산 변압기 공장의 레이아웃을 변경해 증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2월 말에 부임한 조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친 뒤, 공공기관(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거쳐 민간 제조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했다. 이례적 사례다. 그는 미국 반덤핑 관세소송, 저가 수주 전략 탈피, 신규 사업 진출, 인수·합병(M&A) 등의 경영 측면에서 실력을 발휘했지만, 지금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 가운데 하나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유력 컨설팅 회사와 ‘DNA(Do it Now, Action)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장·고객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체력을 길렀다. ‘석다방’ ‘역멘토링’ ‘경영회의 참관’ ‘사장으로부터의 편지’ 등 사내 소통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벌써 4년차 CEO다.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지난해 미국 반덤핑 관세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게 기억에 남는다. (공직에 있을 때 해봤던 일이라서) 미국 상무부 인사들을 직접 만나고 변압기 공장이 위치한 앨라배마주의 주지사, 상원의원 등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소통했다. 관세 60%를 0%로 끌어내렸다. 11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이 환입됐다.”

-미국 전력기기 시장이 호황이다. 물량 감당이 되나.

“미국 시장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을 계기로 신재생에너지 신규 투자와 송·배전망 구축,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까지 맞물려 당분간 호황을 이어갈 전망이다.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해 다각도로 증설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초고압 변압기는 특성상 제품 수명이 길고 시장의 지속가능성, 숙련된 인력 수급 같은 걸 따져봐야 한다. 돈이 있다고 무작정 투자할 수 없다. 울산 공장에서 생산능력을 늘리는 식으로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 1000억원 이상 증대 효과를 기대한다.”


-올해 수주 목표를 두 번이나 상향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2조6500억원 정도의 수주를 따냈다. 하반기에도 미국 등에서 중요한 수주 계약이 이어지면, 올해 4조1000억원 조금 넘게 해낼 것으로 본다. CEO로 온 이후 해외 물량이 늘었다. 미국 중동 유럽의 현지 조직력을 강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외형 성장을 지속한 비결은.

“비대면 영업을 강화하고 내부 체질 개선작업에 자원을 집중했다. 부품을 사고 제품을 파는 구조는 합리적인지, 돈을 회수하는 건 국제표준에 부합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조직의 업무 방식을 바꿔나갔다. 마침 2021년부터 글로벌 전력기기 업황이 좋아졌다. 다른 경쟁사는 코로나19로 납품 능력이 저하된 경우가 있었지만, 우리는 발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신규 사업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은 우리 회사가 이미 한국 최대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창사 이래 최대인 2000억원 규모의 신남원 변전소용 ESS 공급계약을 따냈다. 수전해 등은 전력변환장치 핵심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HD현대플라스포)을 인수해 시장 확대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해상풍력 시장 진출을 위해 제너럴일렉트릭(GE)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일정 물량을 미리 수주하고 난 뒤 GE의 기술력으로 한국에서 터빈을 만들어 납품할 계획이다. 해상풍력 분야에는 특히 외국계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키면서 기존 석탄·가스를 대체할 대용량 발전원으로 해상풍력에 주목한다는 의미 아니겠느냐.”

-조직문화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HD현대일렉트릭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

“‘역멘토링’ 제도의 반응이 좋다. 상무·전무 등의 중역이 멘티가 되고 5~10년차 직원이 멘토가 된다. 50대 중반 나이에 보드카페를 가보고 서핑도 다닌다. 젊은 직원의 생각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 달에 서너 차례 하는 경영회의에 직원이 참관하도록 한다. 연간으로 600~700명이 경영회의를 지켜봤는데 ‘임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더라. 지난해 3월부터는 매월 ‘사장으로부터의 편지’를 띄운다. ‘우리 사장이 뭐 하고 있나’ 엿보면서 함께 하는 느낌을 진솔하게 전해주려고 한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