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중시하는 엘리트 정통 법관… ‘김명수 지우기’ 나설 듯

입력 2023-08-23 04:07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대전고등법원장 시절인 2021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보수 성향의 정통 법관으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법과 정치의 엄격한 분리를 평소 소신으로 삼고 있으며, 법조문을 확대 해석하지 않고 문헌 그대로 엄격히 해석하는 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 후보자가 국회 표결 관문을 넘어 취임할 경우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진행된 각종 사법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22일 “이 후보자 지명은 일사불란하고 균일하게 관리되는 수직적 사법행정으로의 복귀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관 개개인 성향에 따라 판결 내용에 차이가 발생하는 사례를 제어하겠다는 여권의 의중이 담긴 지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소신과 철학이 뚜렷하지만 한편으로는 권위적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전했다.

현 정부가 구상하는 ‘사법부 정상화’를 실제로 구현할 추진력이 있는지를 인선 기준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후보자와 함께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이들도 중도·보수 성향 인사들이었지만 확고한 주관을 갖고 실제 사법부 복원에 나설 추진력이 있느냐는 측면에서 이 후보자가 지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재판 지연’ ‘사법의 정치화’ 등 김 대법원장 체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지난해 12월 대전지방변호사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정치가 경제를 넘어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의 정치화가 논란이 되는 시점”이라며 “법관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지나치게 강하게 관련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는 2021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권순일 전 대법관이 대장동 개발 시행사에서 고액의 고문료를 받은 일을 두고 “당혹스럽다. 국민께서 공정하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4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재판 지연’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관련해 “자신을 희생하며 재판에 몰입하는 판사들에게 유인책이 사라졌다. 법원 내 구성원들만 만족하는 공동체화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후보자는 일본 게이오대 연수를 다녀오는 등 일본 사법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일파(知日派) 법관으로 통한다. 실무에서도 일본 법제와 판례를 자주 참조하는 등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후배 법관은 “이 후보자는 일본 사법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이어오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원 내부에서는 일본 스타일의 관료주의적이고 수직적 문화의 사법부로 회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의 취임 후 핵심의제는 ‘사법부 관료화’의 해소였다. 양승태 대법원장(2011~2017년) 시절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법원의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출발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배치되는 법관 수를 줄여 사법행정 비법관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이런 정책은 법원 내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이라는 일부 성과로 이어졌지만 재판 지연 등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가 새로운 사법부 수장이 되면 전임 대법원장 시절의 인사제도를 손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