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징후 기업의 워크아웃(채무 조정)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5년 만에 또다시 중단될 상황에 놓였다. 일몰 기한이 두 달도 채 안 남았지만, 연장 여부와 관련한 국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여야가 각각 발의한 기촉법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다. 정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상환 유예 종료와 금리·물가 상승 등으로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는데, 워크아웃까지 중단되면 ‘줄도산’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국제기구도 높게 평가한 워크아웃 제도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코스닥·코스피 상장사 중 한계기업은 17.5%에 달한다. 2017년 9.2%였던 한계기업 비중이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내지 못한 곳이다. 5년 주기로 기촉법 일몰 기한이 돌아올 때마다 정부는 마음을 졸이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기촉법은 이미 다섯 차례나 연장됐는데, 연장될 때마다 위헌 소지가 있다거나 관치 금융의 산물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논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이미 수차례 일몰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위헌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금융당국의 개입을 차단할 장치를 충분히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워크아웃이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의 ‘대체재’ 성격이 아닌, 회생 의지가 있는 기업에 추가적인 ‘선택지’를 주는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워크아웃은 구조조정 강도로 보면 회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와 회생 가능성이 비교적 큰 자율협약의 중간 단계다. 은행권의 신용위험평가에서 C·D등급을 받은 부실징후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부실징후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공동관리절차를 신청하면 금융채권자 75% 이상의 찬성으로 개시한다.
신청 건수는 감소세에 있으나, 효과는 뚜렷하다. 특히 회생 의지가 있는 기업에 적합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회생 대비 구조조정 성공률도 높고, 정상화 기간도 훨씬 짧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워크아웃 성공률은 약 34.1%다. 이는 회생절차 성공률(12.1%)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워크아웃과 회생절차의 정상화 기간도 각각 3.5년과 10년으로 차이가 컸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속한 구조조정, 기업의 영업력 개선 측면에서 회생절차와 차별화되는 워크아웃 고유의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워크아웃 제도는 국제 사회에서도 모범적 제도로 평가받는다. IMF는 지난해 ‘코로나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한 정책 옵션 보고서’에서 법원 외 구조조정 체계 활용을 높일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도산 시스템 위기대응 능력 평가 지표에서 60개 주요국 중 한국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일몰 때마다 재연되는 위헌·관치 논란
기촉법 일몰 기한이 다가올 때마다 꼭 뒤따르는 논란이 있다. 바로 재산권·평등권 침해 측면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 관치금융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최근 법원행정처도 이와 관련해 국회 정무위에 기촉법 연장 관련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협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워크아웃을 법으로 강제한다는 점,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 제한을 둔다는 점 등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그동안 6차례에 걸친 개정 과정에서 대부분 문제가 해소됐다고 본다. 먼저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무자가 배제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채무자 신청에 의해서만 워크아웃이 개시되며 도중에도 채무자가 원하면 회생 절차로 언제든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사적 자치 원칙, 재산권 침해 주장에 대해서도 원치 않는 채권자가 ‘반대매수청구’를 통해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치금융 수단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하고 있다. 기촉법은 어디까지나 ‘절차법’이지, 금융당국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있던 금융감독원장의 채권행사 유예 요청 권한도 2016년 폐지된 바 있다.
‘법원 vs 금융위’ 주도권 싸움
금융위는 현재 한시법인 기촉법을 연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시화 논의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촉법에 위헌 소지 등 문제가 없는데도 일몰 시한이 다가올 때마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에 구조조정 선택지 중 하나로 워크아웃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의 반대는 넘어야 할 산이다. 회생절차를 주도하는 법원은 아예 기촉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구조조정이 사법부 영역에서 회생절차로 일원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본질적으로 구조조정 주도권을 둘러싼 일종의 ‘영역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도산에 관한 의사결정을 3부 중 어디서 담당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도산은 권리 관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법원이 맡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위 관계자는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보완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최근 어려운 경영 환경을 감안해 각 기업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정상화 수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워크아웃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