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야산 인근의 근린공원. 70대 김모씨는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와중에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이 터지고 며칠간 공원에 못 나왔다. 모방 범죄가 발생할까 봐 평소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예전에는 공원에 사람이 있으면 덜 외로워서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 인상부터 보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공원 둘레길에서 대낮에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인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곳도 주민 발길이 뜸해졌다. 가볍게 오르기 좋아 ‘맨발 걷기’ 동호회가 있을 만큼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근방 ‘산스장’(산+헬스장)도 주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휴일 낮에도 운동하러 온 이는 6~7명에 불과했다. 평소 5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모두 땡볕 아래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져 그늘진 등산로에는 인적이 없었다. 30년 넘게 마포구에 거주한 홍모(58)씨도 산을 오르려다 이내 단념했다. 그는 “사건 소식을 듣고는 CCTV가 없는 산 쪽으로는 못 가겠다. 밝은 데만 한 바퀴 걷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며 “혼자 산책하지 말라는 현수막이라도 걸어놓거나 공무원들이 한 번씩 순찰이라도 해야 할 텐데, 지금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고 했다.
마포구청에 따르면 해당 공원에 설치된 CCTV는 모두 4대다. 약수터 한 곳과 공원 입구 도로변 세 곳에 한 대씩 설치돼 있다. 등산로를 비롯한 공원 내부는 사실상 사각지대인 셈이다.
다른 공원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구로구 개봉동의 한 공원 유아숲체험장에는 지능형 방범 CCTV를 다음 달까지 설치한다는 안내문이 전부였다. 체험장으로 가는 길목에 112신고 위치표지판이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아들과 함께 공원을 찾은 정모(43)씨는 “어릴 때 살던 곳이라 아이와 함께 놀러 왔는데 산 쪽으로는 올라가지 않으려고 한다. 산이 안전지대가 아니다 보니, 아이 혼자서는 절대 못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관악구 봉천동 한 공원에서는 주민들이 출동한 구급차와 경찰차를 마주치고 놀란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공원과 붙어 있는 산속에서 한 남성이 사망한 채로 발견돼 신고가 접수된 것이었다. 경찰은 이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인과 함께 운동을 나온 60대 김모씨는 “세상이 흉흉하다. 평소에도 공원관리인이 없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산에 젊은 사람들이 오면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걱정하는 딸 때문에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를 호신용으로 챙겨 나왔다고 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관악구 공원 입구에는 ‘안전을 위해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고한다’는 현수막까지 걸렸다. 주민 불안감이 높아지자 서울 관악경찰서는 21일부터 산악순찰대를 편성하고 2주간 구청과 함께 둘레길 등을 중심으로 긴급 방범 진단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신영 성윤수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