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는 천하제일 인재로 소문난 형제들이 있습니다.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과 다산이 평생을 삶과 학문적으로 의지했던 둘째 형 손암 정약전이죠. 영화는 정조의 총애를 받던 실학자 손암 정약전이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정약전 가문은 당시 서양을 통해 들어온 서학(천주교)을 진취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서학을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 정도로만 이해했지만, 정약전 가문의 사촌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자,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제사를 지낸 사건이 불씨가 되어 상황이 악화됩니다. 조정은 통치이념인 성리학을 부정하는 행동에 서학 신도들을 축출해 사형시킵니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서학을 믿지 않는다고 상소하며 위기를 넘깁니다. 그러나 정조가 갑작스레 죽자 두 형제를 견제했던 정치세력에 의해 결국 순조 1년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정약전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섬 흑산도에 도착합니다. 별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대역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경계를 긋습니다. 그는 가거댁이라는 과부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벼슬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버티는 것이야.” 정조가 당부한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그러나 버티면 긴히 쓸 날이 올 거라 약속한 그 임금도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대역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거댁이 소나무 묘목을 파헤쳐 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이유를 묻자, 소나무에도 세금이 붙기에 살려면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미역을 말려도, 김을 말려도, 홍어를 잡아도 세금이라 합니다. 지방관리들의 수탈에 백성들은 힘겹게 살아갑니다. 이 모습을 본 약전은 정치와 학문이 아닌 실질적으로 백성들의 삶에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것이죠.
섬에는 흑산에서 나고 자라 물길과 물고기에 대해 해박한 창대라는 이름의 청년 어부가 있습니다. 사실 그는 나주에 사는 장 진사의 얼자(천민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언젠가 세상에 나가 꿈을 펼치고자 마을 촌장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열심히 글 공부를 하지만 깨달음에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약전은 그런 창대에게 다가갑니다. 대역죄인에게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하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도움이 아니라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 제안합니다. 창대는 그 제안을 못 이긴 척 수락합니다. 창대는 당대 석학의 지도를 받으며 체계적으로 성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약전은 창대의 도움으로 섬과 바다에 존재하는 온갖 생물들을 관찰하고 조사하며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둘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스승이자 벗으로 살아갑니다.
창대는 약전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의 깊이가 더해갑니다. 창대가 다산 정약용의 앞에서 시를 읊었다는 소문이 아버지가 있는 나주에까지 퍼집니다. 소문을 들은 아버지 장 진사는 창대를 양자로 입적하고 소과 시험을 제안합니다. 마침 동생 정약용의 유배가 풀렸다는 소식에 유배지를 우이도로 옮기기로 한 정약전은 창대에게 같이 가자 합니다. 사실 창대는 하찮은 물고기만 연구하는 약전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백성을 위한 길은 목민관(지방 관리)이 지켜야 할 지침을 담은 목민심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창대는 세상으로 나가겠다고 약전에게 말하고, 약전은 창대가 출세를 위해 공부한 것이라며 분노합니다. 결국 둘은 각자의 길로 떠납니다.
소과에 급제해 진사가 된 창대가 마주한 것은 지극히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여전히 관리들은 백성의 삶에는 관심 없고 아전들은 받지 못한 녹봉을 백성들에게서 뜯어갑니다. 백성들은 갓난아기와 죽은 사람들의 세금까지 내야 합니다. 백성들을 쥐어짜서 양반들만 누리는 세상 구조에 창대의 목민심서 꿈은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창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살았던 흑산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들른 정약전의 집에는 스승이 완성한 자산어보가 그를 반깁니다. 영화는 창대에게 남긴 정약전의 편지로 끝이 납니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하지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있지 않겠느냐”라고 말이죠.
세상은 결국 한 사람의 숭고한 헌신과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동시대에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유배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사람에 애정 어린 시선을 두고 신분의 차이를 초월해 창대라는 인물을 세우고 힘없는 백성들의 삶을 위해 자산어보를 집대성한 정약전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은 왜일까요. 물고기와 해양 생물 등을 채집해 명칭, 형태, 분포, 실태를 기록한 자산어보는 흑산도 백성들의 삶에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먹거리로 여기지 않았던 어류들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더 이상 보릿고개를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24)
조재현 PD choj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