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새벽 출근해서 준비해도… 외래 지연돼 죄송할 때 많아”

입력 2023-08-22 04:05
분당차병원 주력하는 ‘다학제 진료’
1500례 이상 참여… 환자 공감 노력
암, 개인 잘못 아닌 교통사고 같은 것
자책 말고 앞으로 할 치료 집중하길

환자 경험 평가 1위 의사로 뽑힌 분당차병원 강버들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1분이라도 더 환자에게 집중하고 싶어 외래 진료가 있는 날에는 새벽부터 출근해 준비를 하고 환자와 진심으로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환자와 가족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커뮤니티에서 '갓버들' '광(光)버들'로 통하는 의사가 있다.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강버들(43) 교수다. 암 극복에 있어 수술·항암 등 치료술 못지않게 중요한 환자와의 교감·소통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진료 추천 글들이 많다. 그는 지난 3월 한 모바일플랫폼이 전국 상급종합병원 소속 5870명 대상으로 진행한 환자 경험 우수 의사 조사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환자 경험 평가는 근래 급부상한 개념인 '환자 중심 의료'의 핵심 지표다.

분당차병원 암센터는 지난 5월말 국내 의료기관 가운데 최단 기간 ‘다학제 통합진료’ 5000례를 달성했다. 암환우 카페를 중심으로 이 병원의 다학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의 감동 사연이 전해지며 입소문을 탔다. 강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다학제 진료에 1500례 이상 참여하면서 환자와 진심으로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학제 통합 진료의 장점은.

“다학제 진료는 여러 진료과 교수들이 함께 시간을 맞춰 모여 환자의 치료 방향 결정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결정보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모으면 더 나은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도 확인되면서 좀 더 안전한 진료를 할 수 있다. 여러 과에서 진행하는 컨퍼런스 형태와 다른 점은 치료 결정에 있어 환자·보호자에게 직접 설명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의료진 의견만이 아닌, 환자·가족과 함께 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을 한다는 것이다. 주치의 독단 결정이 아닌, ‘우리의 환자’라는 모토로 가능한 일이다. 다학제는 필요할 때마다 추가로 진행하면서 환자의 치료 경과를 공유하다 보니 기존 치료보다 훨씬 나은 결과(생존율 향상)를 가져오고 환자·의료진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다학제 진료는 어떤 경우 하나.

“보통 진단 당시, 치료 후 수술 등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수술 후 재발한 경우에도 다학제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다학제 구성원 모두 힘든 시간이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다시 함께 고민하고 다음의 치료 방향 설정과 해결책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컴퓨터가 아니긴 하지만 이런 것이 일종의 ‘딥 러닝(deep learning)’이 아닐까. 특히 암 치료는 여러 가지 무기를 함께 사용해야 가장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학제가 꼭 필요한 분야다.”

-분당차병원은 어떻게 하나.

“우리는 2016년 췌담도암을 시작으로 현재 간·대장·위·폐·두경부암 등 18개 다학제팀이 구성돼 있다. 다학제 관련 각 의료기관마다 공식 발표된 통계가 없어서 직접 수치 비교는 어려우나, 7년간 5000례 달성은 국내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이룬 성과다. 암종에 따라 다르지만, 환자 한 명 진료에 평균 5개 진료과, 8명 이상의 교수가 참여하고 진료에 20~30분 소요된다.”

이 병원 암센터의 다학제 진료 장면.

-어려움은 없나.

“여러 진료과 의사가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을 만들기가 사실 쉽지 않다. 오전 오후 외래 중간 점심시간에 짬을 내거나 하루 종일 진료·수술하고 저녁에 모여서 빵 하나로 끼니를 떼우며 다학제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계속 다학제를 하는 원동력은 치료 결정을 하는 의료진에 대한 믿음과 만족도 때문인 것 같다. 의사 문화의 특성상 시니어 교수 또는 주도권을 가진 특정 교수의 결정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차병원 다학제에선 계급장 떼고 환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위해 가장 나이 어린 교수 의견도 경청하고 존중해 주는 분위기다. ‘내 환자가 아닌, 우리의 환자’라는 마음으로 각 과의 욕심보다 환자를 위한 결정을 지향한다.”

-환자 경험 우수 의사 1위로 뽑혔는데.

“혈액종양내과 특성상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많아서인 것 같다. 진단 시부터 치료 경과 중 짧게는 매주, 길게는 2~3주마다 보게 되니 환자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종양내과 의사는 환자 진단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초진 때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서는 환자의 기분을 헤아리며 어떤 증상으로 검사하게 됐는지, 지금 불편한 곳은 없는지 먼저 살피고 검사 사진을 보여주며 치료 방향에 대해 설명한다. 초진에는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30분은 걸리는 것 같다. 그래서 초진 환자는 진료 마지막 순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진료가 너무 지연되면 다음 환자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나.

“짧은 진료 시간에 1분이라도 더 환자에게 집중하고 싶어 외래진료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출근해 계획을 세우고, CT 찍은 다음 외래라면 병변이 어디에 있었고 몇㎜ 줄었는지를 미리 확인해 놓는다. 그렇게 일찍 준비해도 뒤로 갈수록 외래가 지연돼 환자들에게 죄송할 때가 많다.”

-암환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암은 뭔가 잘못해서 걸리는 병이 아닌,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해 준다. 아무리 조심하고 운동하고 가려 먹더라도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병이라 너무 자책하지 말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치료받았으면 한다. ‘누가 이거 먹고 좋아졌데’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매일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음식이 어떤 것보다 값진 보약임을 잊지 말자.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긍정적인 생각에 초점을 맞춰 생활하길 바란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젊은 암환자를 돕고 싶다. 최근 식생활 변화, 환경적 요인 등으로 젊은 암환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암 진단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부모님,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하는 문제에도 직면해 심리적 고통이 크다. 이들에게 힘이 되도록 미술치료 대학원과 함께 ‘암환자 응원 이모티콘’을 개발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암환자 본인에게 힘이 됐던 말들, 보호자·지인이 환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보내는 것이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