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에 입사하면서 해고 3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됐다. 사목(社牧)을 맡은 나는 직원을 대상으로 설교를 전하고 성경공부도 이끌었다. 당시 직원 절반가량은 기독교인이었다. 사내 교육에선 기독 직장인의 삶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이랜드에서 기독 직장인을 여러 차례 만나면서 이들을 위한 사역이 절실함을 체감했다. 사내 인간관계와 성과 압박, 승진과 인사고과, 적성과 진로 고민…. 수많은 이들이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며 무력감을 느꼈다. 직장에서 인생의 적잖은 시간을 보냄에도 이를 신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기독 직장인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신앙을 녹여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목회자도 드문 게 현실이었다.
매일 회사에서 마주하는 이들을 돕자는 일념으로 1992년 ‘직장사역연구소’를 시작했다. 일터사역을 내 사명으로 본격 받아들인 것이다. 평생을 일터사역에 힘을 쏟고 이를 한국교회에 보급하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이들의 애환에 공감하며 직장에서 신앙인으로 사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 시작했을 따름이다.
연구소 개소 뒤엔 기독 직장인을 격려하고 이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 잡지 ‘일하는 제자들’과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런 연구소 사역이 점차 알려지면서 여타 기독 기업에서도 사내 강의를 요청해왔다. 다양한 분야에 몸담은 기독 직장인을 섬길 길이 열린 것이다.
추후 이랜드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함께 일터사역을 할 사목 양성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사목은 이랜드의 각 브랜드와 사업에 소속된 구성원을 위해 목회하며 이들의 직장 생활과 신앙 성장을 돕는 역할을 했다. 나는 동역하는 젊은 사목을 가르치는 동시에 글을 쓰고 강연하며 일터사역의 중요성을 알렸다. 99년엔 안양대 신학대학원에 ‘직장사역’ 강의가 개설되기도 했다.
일터사역에 이토록 몰입할 수 있던 건 목회 전 나 역시 기독 직장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첫 직장인 국방과학연구원에서 6년간 근무하며 진로 고민뿐 아니라 업무 중 상사와의 갈등, 술자리의 어려움 등을 겪었다. 미국 유학 기간 청소업체와 식당, 세탁소 등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한 경험도 귀중한 자원이 됐다. 이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면 나는 각 분야에서 고생하는 기독교인 앞에서 노동의 ‘노’자도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이민자로 겪어야 했던 모멸감이나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 아픔 등도 직장인의 애환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일터사역을 하며 나는 ‘교회 사역은 거룩하고 회삿일은 속되다’는 이원론을 경계해왔다. 온 세상을 주관하는 하나님에게 성속(聖俗)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직업에 귀천을 나누고 차별하는 건 그분의 시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무직이든 현장직이든 자신의 소명을 받들며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주님의 제자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