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덕 교수의 바이블 디스커버리] <8> 위험천만한 바닷길

입력 2023-08-22 03:07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계 21:1, 새번역) 페니키아처럼 항구와 선박을 충분히 확보한 지역민은 지중해를 해상 고속도로 삼아 무역과 정복 전쟁을 활발하게 수행했습니다. 반면 지중해와 인접하면서도 지형상 항구를 확보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바다를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괴물 레비아탄(리워야단, 욥 41:1)과 사람을 삼키는 큰 물고기(욘 1:17)가 출몰하는 혼란스럽고 기이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다에 의욕적으로 진출한 때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카바만의 에시온게벨과 엘랏을 확보했습니다. 솔로몬은 그곳에 항구와 조선소를 건설하고 선단을 꾸렸습니다. 이때도 자력보다는 페니키아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왕상 9:27~28) 페니키아인은 일찍이 동쪽 레반트에서 서쪽 지브롤터해협까지 지중해를 누비며 무역했습니다. 나중에 유다의 여호사밧은 솔로몬처럼 오빌의 금을 꿈꾸며 선박을 건조하고 선단을 꾸렸으나 첫 출항에서 폭풍을 만나 파선했습니다.(왕상 22:48) 에돔이 항구를 되찾자 이스라엘의 해상 활동은 위축되고 바다를 멀리했습니다.

로마 역시 이집트에서 생산한 밀을 운반하는데 육로보다 바다가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중해는 해적이 들끓었습니다. 후미지고 섬이 많은 이탈리아 남부 바다와 에게해는 해적의 먹잇감이 넘쳐났습니다. 해적 떼는 곡물선을 노리기도 했으나 주업은 노예무역이었습니다. 로마 노예시장은 많을 땐 하루 10만 명 이상 거래했는데, 대부분 해적이 공급했습니다. 카이사르마저 젊어서 해적에게 포로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뒤로는 해적의 기세가 한풀 꺾였으나 바람 역시 항해를 위협했습니다. 지중해는 육지와 가까워 바람을 가늠하기가 까탈스럽습니다. 낮에는 바다에서 뭍으로, 밤에는 다시 뭍에서 바다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장비가 부실한 작은 선박은 연안 항해마저 버거웠습니다. 지중해 곳곳에 돛을 무력화하는 무풍지대가 도사렸고, 겨울이면 지중해 동부 연안에 북풍이 밀어닥쳐 배가 난파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북풍 신에게 해마다 제물을 바칠 정도였습니다.

로마 당국은 해상에서 선박이 강풍을 만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특정 시기에는 아예 법으로 항해를 금지했습니다. 닫힌 바다(mare clausum)라고 부르는 해역이 폐쇄되는 기간은 11월 10일부터 3월 10일까지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일기가 불순하고 겨울 태풍이 잦아 주간은 물론 야간 항해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행 27:20) 뱃사람이 안전하게 여기는 항해 시즌은 5월 26일부터 9월 14일이었습니다. 이 기간을 벗어난 바닷길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는 바울의 경험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행 곡물 화물선으로 갈아탄 바울 일행은 맞바람에 고전하다가 금식하는 절기를 훌쩍 넘깁니다.(행 27:9) 그리스 최남단 크레타섬 미항에 겨우 도착하자 바울은 그곳에서 겨울을 나자고 제안합니다. 선장과 선주가 서쪽으로 64㎞ 떨어진 페닉스(뵈닉스)를 고집하는 바람에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화물선은 강력한 태풍을 만나 파선해버립니다.(행 27:14~20) 우여곡절 끝에 바울과 승선자 전원이 구조되었으나 겨울철 항해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힘겨운 바닷길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를 찾아볼 수 없다는 요한의 글에 안도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