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박병곤(38) 판사의 재직 중 SNS 글과 관련한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박 판사의 글 게시 경위와 의도 등을 확인 중이다. 향후 조사 결과와 처분 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관에게도 SNS 사용의 자유가 있지만, 재판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소속의 박 판사는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의원에게 검찰 구형량 5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여권에서 ‘정치 편향’ 판결이라는 공세를 펴는 와중에 박 판사가 과거 정치적 색깔을 띤 글들을 종종 SNS에 게시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박 판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3월 대선에서 낙선한 이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 패배가 결정된 다음 날에는 “울긴 왜 울어?”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대사가 담긴 중국 드라마 장면 사진을 올렸다. 박 판사는 올 들어 현 재판부에 배치된 이후 과거의 SNS 글을 지우거나, 한국법조인대관에 등재된 자기 신상정보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현직 법관이 SNS에 재판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글을 올리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법관이 정치적 편향성을 외부로 드러낸다면 사법의 본질인 공정한 재판에 대해 국민이 불신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말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법무법인 공간)은 “이런 글들이 재판이 불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외관을 형성했다는 게 문제”라며 “재판받는 시민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은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의 SNS 글 논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2011년 페이스북에 ‘가카새끼 짬뽕’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서면 경고를 받았다. 김동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2020년 ‘문재인 대통령 하야’ 요구 글을 올렸다가 파장이 일자 삭제했다.
법원 내부에서 법관의 SNS 활용 관련 연구도 진행됐다. 정진아·김기수 부장판사는 2021년 12월 법원도서관 사법논집에 실린 논문에서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관한 법관의 견해 표명은 공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드는 건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논문은 “법관이 정치·사회적 주제에 관해 의견 표명을 할 때는 객관적 사실, 균형적 사고에 기초해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