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 관리시설 화재, 18년 방치한 노후 기기가 원인

입력 2023-08-17 04:04
대전 지역 방사성동위원소(RI) 폐기물 관리시설에 저장된 중·저준위 RI 폐기물 일부가 지난 2020년 트럭에 실려 경북 경주시 방사성폐기물처리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국민일보DB

지난달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하는 방사성동위원소(RI) 관리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 원인이 20년 가까이 방치한 노후 기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인체에 계속 축적될 경우 빈혈·백혈병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보관 시설에 화재가 발생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RI 폐기물 안전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전 10시6분쯤 대전에 위치한 RI 관리시설 옥상(3층) 승강기 기계실에서 화재가 났다. 당시 직원이 현장 도착 즉시 소화 조치를 시행해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현재 시설에는 RI 폐기물 35드럼(200ℓ 기준)이 보관돼 있다. 1960년대부터 국내에 도입된 방사성동위원소는 암세포 추적 등의 연구와 의료분야는 물론 비파괴검사·식품살균처리·음료 불량검사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사용 후 배출된 RI 폐기물은 2015년 6월까지는 시설로 인수됐지만 그해 7월부터는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으로 이송되고 있다. 정부는 시설에 남아있는 폐기물도 순차적으로 경주로 옮기고 있는데 아직 30드럼 가량은 그대로 보관 중이다.

공단 자체 조사 결과 이번 화재는 기계실에 설치된 회생저항장치의 노후화 탓에 발생했다. 회생저항장치는 승강기 운영 과정에서 적정 전압 이하 상태(수용인원보다 적게 운행)가 발생할 경우 남는 전압을 외부로 방출하는 기능을 한다. 통상 이 기기의 교체주기는 3~5년이다. 그러나 RI 관리시설은 무려 18년간 해당 기기를 교체하지 않고 운영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설 승강기 관리 주체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다. 연구원이 점검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매월 정기점검을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후 기기 문제가 발견 혹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공단이 내놓은 후속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단은 다음달 회생저항장치를 교체할 방침이다. 또 9월 중 시설 내 소화기를 추가 배치하고 전기설비업체를 통해 시설 안전 점검을 실시키로 했다.

아울러 공단은 오는 11월부터 소방안전 순찰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현재 시설 화재감시인은 건물 외곽 등 7개 구역을 순찰하고 있는데, 여기에 옥상을 추가 감시 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공단이 RI 폐기물의 위험성을 감안해 단순한 땜질 처방에 그치지 말고, 시설 전반의 화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종=박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