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₂ 잡아 땅속에 가둬… 탄소배출 ‘0’ 달성 기대감

입력 2023-08-17 04:08
폴 바라클로그 CO2CRC 최고운영책임자(COO)가 15일(현지시간) 호주 오트웨이 탄소 포집 저장(CCS) 실증센터에서 이산화탄소 생산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SK E&S 제공

“쉬이익, 쉬이익.” 호주 멜버른에서 약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오트웨이 초원의 한복판에서 ‘이산화탄소 생산정’이 압력밥솥 소리를 내고 있었다. 땅속에 묻을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설비다.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소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무심히 풀을 뜯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진은 소들의 발 밑에 현재까지 총 9만5000t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했다. 세계 최대 규모다.

15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큰 탄소 포집 저장(CCS) 실험실인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를 찾았다. CCS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잡아다 땅속에 가두는 기술이다. 단기간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어려운 시멘트, 석유화학, 철강 등의 산업에 대량 감축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와 한국 모두 ‘국부의 원천(천연가스, 제조업)’과 ‘탄소 중립’을 연결하는 가교로 CCS에 주목한다.

게티이미지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는 호주의 국책 연구기관인 CO2CRC에서 2004년부터 운영 중이다. 각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기술 고도화에 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2008년부터 연구원 파견을 포함해 다양하게 협력하고 있다.

실증센터엔 1개의 이산화탄소 생산정, 3개의 이산화탄소 주입정, 4개의 관측정이 있다. 생산정은 퍼올린 천연가스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천연가스는 인근 지층에서 자연 형성된 것으로 이산화탄소 함량이 80%에 달해 경제성은 없고, 실험용으로 쓰인다. 천연가스에서 뽑아낸 이산화탄소는 주입정으로 보낸다. 주입정에선 이를 2㎞ 아래 고갈 가스전과 1.5㎞ 깊이 대염수층에 넣어 저장한다. 관측정은 땅속 이산화탄소가 잘 갇혀 있는지, 땅밑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 등을 정밀 관찰하는 설비다.

오트웨이엔 두껍고 단단한 암석층(덮개암)이 있어 이산화탄소의 유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폴 바라클로그 CO2CRC 최고운영책임자는 “약 10만t의 이산화탄소를 주입 완료해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내년엔 추가로 약 2만t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한 뒤에 고도화한 모니터닝 기술로 관찰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주요국의 정부와 산업계는 CCS를 탄소 중립으로 가는 ‘징검다리 기술’로 본다. 탄소 감축이 어렵지만 현대 문명에 꼭 필요한 분야의 기업들이 CCS로 탄소 배출 ‘0’를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박용찬 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비행기 같은 장거리 수송 분야는 신재생 에너지에 기초한 전기화(배터리 구동)가 어렵다. 상당 기간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산업 분야에는 CCS가 무조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2020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CCS 기술이 없다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유엔 산하 ‘기후위기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도 지난 3월에 ‘CCS 기술의 적극 활용’을 권고했다.

대표적 천연가스 수출국인 호주는 고갈된 가스전을 활용해 ‘CCS 허브’로 거듭나려고 한다. 현재 호주 의회는 해외에서 감축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호주로 수입·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마틴 퍼거슨 CO2CRC 회장은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화석연료 사용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다. 한국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호주에 있는 고갈 유전과 가스전에 저장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EU 미국 등과 비교해 국가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크다. 석탄(2019년 기준 40.4%) 및 액화천연가스(25.6%) 발전 비율도 높다. 한국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CCS로 이산화탄소 480만t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민간 기업으로는 SK E&S가 호주에서 지중 이산화탄소 저장소 개발을 추진 중이다.

오트웨이=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