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한 침팬지·사자의 비극… ‘생추어리’ 전환 목소리도

입력 2023-08-16 00:04 수정 2023-08-16 00:15
대구 달성공원에서 사육 중이던 침팬지 ‘루디’가 지난 11일 우리에서 탈출한 뒤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다. 루디는 마취총을 맞고 회복하던 중 숨졌다. 오른쪽은 지난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가 산으로 도주해 있는 모습. 대구경찰청·경북소방본부 제공

사육 야생동물들의 탈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철창을 빠져나간 동물이 사살되거나 포획 과정에서 숨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야생동물 사육 기준과 관리감독 강화, 열악한 시설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경북 고령의 한 민간 목장에서 사육되던 암사자 ‘사순이’는 지난 14일 관리자가 우리를 청소하는 사이 문틈으로 탈출했다가 1시간 만에 엽사들에게 사살됐다. 15일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사순이가 살았던 환경은 열악했다. 넓이 14㎡, 높이 2.5m 철장에서 20년 가까이 갇혀 지냈다. 현행 야생생물법상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인 사자는 사육이 불가능하지만, 법이 시행된 2005년 이전부터 사육된 사순이는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았다.

사순이가 죽기 사흘 전인 11일에는 대구 중구 달성공원 동물원에서 침팬지 ‘알렉스’와 ‘루디’가 탈출했다. 알렉스는 사육사 지도에 따라 우리로 돌아갔지만, 루디는 인근 주택가로 향했다. 마취총 3발을 맞은 뒤에야 포획된 루디는 회복 중 기도가 막혀 죽었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부서진 울타리를 통해 탈출했다가 포획되기도 했다.

일부 동물단체는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동물원이나 민간 목장 등이 아닌 ‘생추어리(Sanctuary)’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생추어리는 학대나 방치를 당해 야생성을 잃는 등 여러 이유로 자연에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시설이다. 주로 넓은 공간에서 동물이 자연상태와 가장 흡사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인간 중심인 동물원과 달리 생추어리는 동물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며 “현재는 문제가 있는 동물원에서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아도 동물들을 보낼 곳이 없다. 정부 관리의 생추어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충남 서천과 전남 구례에서 야생동물과 반달가슴곰을 위한 생추어리가 조성되는 중이다. 조 대표는 “추진 중인 생추어리가 무산되지 않게 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육 곰 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도 “전국의 공영동물원을 이른 시일 내에 동물보호시설로 바꾸고, 자격 미달 시설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을 수용하라”는 논평을 냈다.

현실에 맞게 동물원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동물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소속 권유림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자연상태와 가장 흡사한 소규모 생추어리가 조성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동물원법 개정을 통한 동물원 환경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